▲ 최주환 대전사회복지관협회장 |
청소년들은 24시간을 놀아도 모자라다. 그런데 놀기는 고사하고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시간에는 오로지 책상에만 붙어있어야 하는 그들의 처지를 무어라고 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2학년부터 휴일은 아예 없다. 어떤 학교는 일요일도 학교에 나오라고 채근한다고 들었다. 이런 청소년들에게 창의적인 꿈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창의적인 꿈을 가질 여유나 계기가 없는 청소년들에게 창의적인 꿈을 운운하는 것은 나무 밑에 앉아서 물고기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청소년들의 탈선도 우리 가슴을 안타깝게 한다. 그 탈선의 내용과 정도를 듣고 있자면 억장이 무너진다. 몰지각한 어른들이 이곳저곳에 늘어놓은 덫에 걸려서 푸른 청춘을 허공에 날려버린 청소년들은 결국 우리 사회의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지금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아픔은 우리 사회가 강요한 측면이 있다. 그들을 무한경쟁의 벌판으로 내 몬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어른들이다. 청소년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도 청소년들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간혹 유복해진 경제적 환경이 오히려 문제가 되기도 하고, 탄력적이지 못한 교육환경도 청소년들을 아프게 한다. 그들의 아픈 현실을 멀쩡하게 보고 있으면서도 뾰쪽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뭐라고 해야 옳을지 답답하다.
청소년과 관련된 법률이 30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수많은 법률을 다 읽어 보았다는 어느 청소년 전문가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청소년의 소망을 국가차원에서 지원한다는 내용은 없다고 단언한다. 온갖 미사여구만 즐비할 뿐 청소년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이나 위기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는 그저 시늉에 그치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굳건하게 자라는 청소년들도 물론 많다. 부모가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의연하게 부모를 모시고 살아가는 청소년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이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면서 도무지 공부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그야말로 피땀 흘리는 노력 끝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학에 진학한 사례는 눈물겹다. 자신의 처지도 여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보다 어려운 가정을 도우려는 청소년을 보면 천사가 환생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청소년문제를 학교나 가정에 일임해 놓고 있는 작금의 청소년 정책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가 차원의 청소년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수련활동의 진흥이고, 가출 청소년의 관리 수준이라면 이는 청소년문제와 관련된 국가의 역할은 없다고 보는 것이 차라리 옳다.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세계화와 세계적 기준을 말하면서 왜 청소년문제는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기준을 외면하고 있을까. 청소년을 위한 국가차원의 노력이 미미한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소망하는 것은 육지에서 배를 움직이려는 것과 같다.
만약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청소년문제를 이렇게까지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청소년문제 전문가의 말이 생각난다. 청소년들의 충혈 된 눈에서 우리나라의 건강한 미래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청소년을 국가의 미래라고 윽박지르기 전에 그들이 진정으로 우리나라의 미래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가꾸는 국가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 청소년도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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