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수 건양대 총장 |
그런데 올해 5월은 우리 대학이 개교 20주년을 맞는 뜻 깊은 생일도 들어 있다. 성년을 자축하는 의미로 20주년 행사를 갖기로 했으나, 화려하고 시끌벅적하게 하기보다 내부적으로 조용히 치르기로 했다. 대외적인 행사는 마침 가정의 달이고 어버이날도 있고 하니 5월 4일에 지역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설렁탕 음악회를 열었다. 설렁탕을 드시고 난 후 유명한 가수들과 코미디언의 공연을 보실 수 있도록 준비했는데, '설렁탕 효잔치'라고 이름을 붙였다.
개교 20주년을 맞아 우리 대학과 인연을 맺어온 외부의 유명 인사들이나 해외의 자매대학 총장들도 초청하여 학교의 발전상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지역주민들과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이 더 의의가 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어르신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마련해 드리면, 어버이날을 맞아 온 가족에게 기쁨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였다.
어버이날이 되면 나 역시 나이가 나이인 만큼 자식들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지만, 내가 카네이션을 꽂아드리고 대접해 드려야 할 부모님이 안 계신 것이 참으로 아쉽기만 한다. 특히 어머니 생각을 하면 늘 가슴이 찡하니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버지는 워낙 말씀이 없으시고 엄하셨던 분이라 늘 자애롭게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셨던 어머니만큼 그리운 정은 덜한 것 같다.
내가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살아생전 나에게 베풀어주셨던 무한한 사랑을 그때는 잘 몰랐기 때문이다. 결혼한 후 주말이면 대전에서 고향 논산 양촌까지 부모님을 뵈러 내려왔는데, 돌아갈 때 어머니께서는 동구밖까지 따라 나오시면서 당신께서 손수 농사지은 밤이니 콩이니 호박꼬지 등속을 봉지봉지 싸서 내 손에 들려주셨다. 그런 어머니께 나는 짜증을 내곤 했는데, 몇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대전까지 가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귀찮고 짐이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런 것을 챙겨줄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스럽기만 했다. 자식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은 어버이의 마음을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알게 되었으니, 효도하고 싶어도 부모님은 때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백번 지당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효를 모든 행실(行實)의 으뜸으로 쳤으며, 단순히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정이 아닌 엄격한 도덕적 의무로써 받들기도 했다. '효경(孝經)'에서는 효는 백 가지 행실의 근본이며, 모든 행실이 효가 아니면 바르게 서지 못하고, 만 가지 착한 일이 효자가 아니면 행하지 못한다고 했다.
또 불교에서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라 하여 경전을 통해 효도를 강조하고 있다. 어머니가 아기를 낳을 때는 3말 8되의 피를 쏟고 8섬 4말의 젖을 먹인다고 했다. 그래서 부모의 은혜는 자식이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그 큰 수미산(須彌山)을 백 번, 천 번 돌더라도 다 갚을 수 없다고 했다.
효는 부모에게 자식이 행하는 공경이지만, 효친의 마음이 이웃어른이나 노인들에까지 확대된 것을 경로(敬老)라고 한다. 효친이나 경로는 그 대상만 다를 뿐이지 공경하는 마음과 태도와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경로효친사상이 가정과 사회의 윤리적 근간을 이루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나의 부모뿐 아니라 이웃어른들까지 공경하는 우리의 미풍양속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기만 한데, 개교 2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우리 대학의 '설렁탕 효잔치'가 지역 어르신들께는 좋은 효도 선물이 되고, 학교로서는 뜻 깊은 경로잔치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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