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지 124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는 종이라고 하면 당연 이 종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실제 이 종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신종의 명문(銘文·새겨진 글씨)에는 1000여 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에는 16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 중 앞의 12명은 종에 새겨진 문장을 지은 사람과 사업을 주관한 사람들이고 나머지 4명은 실제 종을 만든 기술자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4명의 기술자들과 함께 새겨진 12명의 이름 안에 당대 최고 권력자는 물론 이후 왕까지 된 사람도 있다는 점이다.
계급사회였던 통일신라시대에 신분이 낮은 기술자가 역사에 남을만한 큰 종을 만들고 그들의 이름이 권력자들의 이름과 함께 새겨진다고 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었을 것임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인재(人才)전쟁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이 시대의 기술자에게 있어 이름이 알려진다는 것은 개인적인 자부심인 동시에 무엇보다 그의 몸값을 엄청나게 상승시켜줄 기회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기술자로서 이름을 알릴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기술개발에 참여하여 발명을 완성한 기술자는 특허출원서에 발명자로서 게재되어 널리 알려질 수 있게 되는 권리를 갖게 되는데 이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고유한 권리다.
그럼에도, 특허출원을 할 때 실질적으로 발명에 기여한 사람이 발명자에서 배제되거나 진정한 발명자가 아닌 관리자나 상급자가 공동발명자로 기재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 우리 기업 문화의 현실이다.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의 한 연구회에서는 특허원부에 공동발명자가 너무 많다는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이는 발명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발명자들로 인해 진정한 발명자의 기술개발 성과가 희석됨으로써 진정한 발명자의 게재권이 손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특허청에서도 진정한 발명자를 보호하기 위한 발명자 확인 제도에 관해 연구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발명자 게재권에 대해 올바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사회 전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발명자를 존중하는 문화의 정착이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출발선 상에 발명자 게재권에 대한 인식 제고가 자리잡고 있음은 분명하다.
성덕대왕신종이 완성된 지 1240년이 지난 지금, 이 종이 더욱 빛나 보이는 것은 통일신라의 뿌리 깊은 신분질서 속에서도 기술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고자 했던 성숙한 문화유산이 명문(銘文)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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