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린 시절 다루기 어려웠던 화선지를 앞에 놓고 진한 묵 내음 속에 숨을 고르며 글씨연습을 했었다.
일반 감상 대중에게 있어 서예에 미술전시 만큼 여러 곳에서 수많은 전시회를 볼 수는 있으나, 쉽사리 이해를 하고 감동을 받기란 어려웠다.
작품의 내용이나 배경을 알고 관람하면 한층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서예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좋은 글들을 귀감삼아 살아오면서 40여 년을 성찰한 박홍준은 요즘 시대에 서예가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박홍준의 작품에는 늘 힘이 넘쳐난다.
10폭 병풍에 빼곡히 들어차 있는 160자의 글씨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를 재해석한 박홍준의 대표적 글씨체로 평가받는다.
한 획 한 획마다 고구려 민족의 활달하고 강직한 기상과, 장대 기골 한 풍채가 느껴진다.
필획사이로 배어 나오는 기운과 서체 간의 공간 운용으로 일어나는 긴장감은 다부지며, 구조적인 힘을 갖게 한다.
다소 느껴질 수도 있는 거칠음은 투박함보다는 곱게 다져진 섬세함마저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으로 빠져들게 한다.
박홍준 서예가는 “호태왕 서체에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한 진일보한 글씨체”라고 설명했다.
박홍준은 평생을 좋은 책으로 엄격하게 쌓아올린 공부로서 스스로를 풍부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며, 획일화를 지양한다.
대개 서둘러 쓴 것을 초서라 생각하기 쉽지만, 초서란 간략하게 쓰는 것이다.
박홍준은 “초서는 모든 글씨체의 기본이면서도 모든 글씨체에 능통해야만 제대로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생의 작품은 초서를 해서화 한 것으로 먹의 농담이 자유자재로 구사되고, 형식을 파괴한 들쭉날쭉한 글자의 크기에서는 여유로운 멋이 느껴진다.
형식을 깨고 나가 자신만의 서법을 구축하는 박홍준은 묵향의 진한 기운으로 삶을 청정하게 표현해내고 있다./박수영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