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
기억은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생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진화한 능력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의 신체도 변하고 주변 환경도 변하고 모든 것이 변하므로 기억을 통해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위험에 대비하고 유리하고 좋은 것은 다시 반복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을 따라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일정한 속도로 기억의 세계로 들어오지만 기억을 떠올리는 속도, 즉 재생속도는 일정하지가 않다. 데자뷰현상처럼 과거의 기억이 반복된다든지, 번갯불처럼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든지, 임사체험처럼 짧은 순간에 평생 살아온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식으로 신체의 상태와 주변환경에 따라 자전적 기억의 재생속도는 달라질 수 있다.
자전적 기억은 태어나서부터 시작되지만 우리가 재생할 수 있는 기억은 기껏해야 두세 살 이전으로는 거슬러 올라가기 힘들고 보통 너댓 살 때까지 소급한다.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최초의 기억을 시각적 이미지와 언어로 묘사한다고 한다. 어떤 장면, 사람의 외모, 그리고 그들의 대화 내용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스토리는 언어능력이 발달해야 가능하므로 어린아이가 뭔가 기억을 하고 싶어도 언어가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억이 잘 안 된다. 생후 18개월이 되어야 언어능력이 발달하고, 유아기 최초의 기억은 언어발달 시기와 비슷하게 시작된다. 또한 우리가 최초의 기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가운데는 나중에 편집된 것도 많다고 한다.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 어렸을 때 사진, 비디오 등을 보고 자신의 어렸을 때 모습을 재구성해서 기억하고 있던 것을 최초의 기억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언어능력이 발달하고 인지능력이 발달하면서 기억의 양이 급증한다. 자전적 기억의 양은 20대를 전후해서 극에 달했다가 서서히 감소한다. 기억의 양과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길이는 비례한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의 양이 감소함에 따라 지나간 세월의 길이도 짧게 느껴지는 것이다.
시간과 나이의 관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모래시계다. 모래시계는 뒤집어놓기만 하면 새로운 시간이 생기고 한 동안 시간이 흐르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뒤집기를 반복할수록 모래시계는 점점 빨라진다. 모래알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매끄럽게 다듬어져서 나중에는 마찰이 거의 없이 아래로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면 생리적 시계들이 대부분 느려지기 때문에 세상의 속도가 빨라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행동이 느려지면서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서도 시간을 길게 늘이고 싶다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꾸 새로운 것들로 시간을 채워야 한다. 일에 열중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아니면 신나게 여행을 다녀오거나, 끊임없이 삶에 변화를 주어 지속적으로 정신적 육체적 자극을 받아야 한다. 권태가 우리의 시간을 훔쳐간다. 반대로 충만하고 흥미로운 일들은 시간에 무게와 폭과 부피를 준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공허한 세월은 바람이 한번 불면 사라져버리게 마련이다. 촌음을 아껴 열정적으로 꽉 찬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나이에 상관없이 시간을 늘리는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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