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우 공주대 교육학과 교수 |
'갑'이 살고 있는 마을에 욕심쟁이 세력가 '을'이 있었다. 어느 날 '을'이 세력을 휘둘러 '갑'의 집안을 송두리째 차지해 버렸다. '을'은 '갑'의 집을 차지하고 사는 동안 돈을 들여 정원을 잘 다듬었다. 단층집이 불편해서 이층을 올렸다. 내부 인테리어도 고급품으로 바꿨다. 자식들도 가르쳤다. 성형수술까지 해줬더니 인물이 훤해졌다. '을'은 이렇게 '갑'의 집을 제집처럼 차지하고 40여년을 살았다.
'갑'은 갖은 고생을 다한 끝에 간신히 집을 되찾게 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집을 되찾은 '갑'이 '을'에게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지(旨)대로 한다면, '을'에게 그 동안 여러 가지로 살림에 기여한 것을 백배 치하하고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예화(例話)의 '갑'이 '을'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에 동의할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제 정신이 아니라면 모를까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억만 걸음을 양보해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그런 실적이 있었다고 하자. 그런 실적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한국을 위한 것이었는가? 왜적을 위한 것이었는가? 그것이 '갑'을 위한 것이었는가? '을'을 위한 것이었는가? 이따위 것들을 힘들여 말해야 한다는 사실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조잡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저열한 이론이다. 자기들의 잘못을 감추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인들의 얕은 수작도 기가 막히는 일이거늘, 하물며 대한민국에서 이런 것을 이론이랍시고 펴놓고 얘기하는 무리들이 있다니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식민지 근대화 혜택론'보다는 오히려 '식민지 근대화 해악론(害惡論)'이 논리가 순하게 성립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적의 침략이 없었다면, 근대 이후 한국의 모습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보다 더 잘 살게 되었을까? 못 살게 되었을까? 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는 것이므로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분명한 사실이 있다.
왜적의 침략으로 우리의 자생적인 근대화 노력이 좌절됐다. 왜적침략기를 통해 무수한 폭압과 수탈이 자행됐다. 그리하여 일부 왜적추종배들을 제외한 수 많은 국민들이 고통 속에 신음했다. 민생의 탄압과 물산의 수탈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국력과 민생을 진흥하고자 했던 우리의 근대화 의지가 뿌리까지 짓밟혔다는 것이다. 민생도 사회도 국가도 미래지향적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되었던 것이다.
무모한 망상에 광분하던 왜적이 자멸하고 우리는 광복을 맞이했다. 그러나 왜적의 침략과 수탈이 자행되는 동안 국민들이 받은 수모와 고통, 국가와 민족의 분단, 간도(間島)의 도난(盜難)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폐해를 입었다. 일본열도 전체를 다 팔아서 갚아도 모자란다. 일본은 이 죄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갚을 수 없으므로 차라리 잘못이 아니라고, 죄가 없다고 우기기로 작정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다. 잘못이나 죄가 없다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은인이라고 뻐기고 덤비는 꼴이다. 이렇게 사실(史實)을 호도(糊塗)하고 시간을 끌다 보면, 전죄(前罪)의 대가를 치르는 부담을 덜 수 있겠다는 생각이 틀림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죄를 더 저지르는 것에 불과할 따름임을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 해악론'을 주장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식민지 근대화 혜택론'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의 몰지각한 학문적 풍토가 가련하고 불쌍하다. 한일관계와 역사에 관한 한 태생적으로 거짓과 술수에 이골이 난 일본은 그렇다 치고, 한국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한국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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