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동막골' 같은 일이 실재했다는 게 신기하다. 충남 이야기를 충남의 빛으로 담고 싶었던지 청양에 세트를 짓고 찍었다.
언뜻 '…동막골'이 떠오른다. 한국전쟁이란 배경, 인민군과 시골마을 사람들의 부딪침이라는 설정은 닮았다. 하지만 '…동막골'이 전쟁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판타지라면, 석정리를 무대로 한 '적과의 동침'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전시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현실감을 십분 불어넣는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언제나 피해를 보는 건 우리야.” 극중 설희의 대사는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는 지를 함축한다. 전쟁이야기, 정웅과 설희의 로맨스가 아니라 석장리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거다,
재춘(유해진)-봉기(신정근)-백씨(김상호), 이른바 '코믹 3인방'이 위기에 대처하는 민초들을 대변하며 깨알 같은 웃음을 흩뿌린다.
입으로만 인민군에게 절대적 충성을 맹세하고 뒤에선 씹기 바쁜 재춘, 어눌하지만 촌철살인 한마디를 툭툭 던지는 봉기는 위기에 부닥쳤을 때 우리가 보여주는 행동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제강점기 땐 친일파로 굴었던 백씨는 권력이 바뀔 때마다 상황에 적응하는 놀라운 임기응변의 소유자다.
그래도 밉지 않다. 엄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아비로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수단임을 넌지시 드러내기 때문이다. 격동의 현대사를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낸 시도는 이 영화의 미덕이라 할 만하다. 영화엔 나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아무리 웃음으로 덧씌운다고 해도 현실의 전쟁은 비극이다. 후반 들어 전쟁의 비극성을 부각시키려하지만 너무나 느닷없어 오히려 당황스럽다. “이념도 체제도 시(詩)처럼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날”같은 메시지로 얼버무리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얼기설기 구멍이 보이는 짜임새, 훈훈함을 살리느라 늘어지는 전개 등 꼼꼼하지 못한 연출이 눈에 거슬리지만 웃음을 주다가 감동까지 안기겠다는 의도만큼은 잘 살려냈다. 그래, 전쟁은 비극이지만 비극 속에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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