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기선 한서대 총장 |
'동일본 3·11 대지진'이 미국의 '9·11 테러'를 연상할 만큼 엄청난 재앙을 TV와 신문 등을 통해 지켜보면서 지진과 쓰나미의 위력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보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한 달여 지난 동안 일본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방지에 총력적인 싸움에 나서면서 쓰나미가 몰고 온 사태해결의 큰 줄기는 어느 정도 잡아 가고 있는 형세다.
필자는 극도의 불안과 고통 속에서 일본사회의 위기 대응을 지켜보며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적지 않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위기에 맞서는 일본인들의 철저한 질서의식과는 달리 정해진 매뉴얼에 얽매여 사태 해결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일본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이다.
일본인들의 철저한 질서의식은 단연 일등감이다. 해외의 한 언론이 “일본의 시민의식은 인류의 정신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찬사를 보낼 정도로 의연했다. 피해지역 주민들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도 평소 방재훈련에서 익혔던 매뉴얼 그대로 조용히 지시에 따라주었다. 일본인은 유달리 결속이 강하다. 지진과 쓰나미 뿐이었다면 엄청난 상처도 곧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은 침착하게 협조하는 시민의식을 따르지 못했다. 민주당 정부는 지진,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라는 미증유의 재앙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리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사고를 키웠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였다. 원전 사고 초기엔 미국과 프랑스의 지원제의를 거절해 수습기회를 놓쳤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방사선의 유출상황을 축소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 도쿄전력의 자료를 그대로 발표하면서 주민 대피에 여러 차례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 스스로 정부의 신뢰를 잃었다. 각 부분이 연결이 잘되지 않아 서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모를 때가 많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머리는 크나 다리는 약한 정부'였다.
필자는 이것이 일본의 이야기 일 수만은 없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가 최근 겪은 사상 최악의 구제역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11월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소, 돼지 전염병 구제역 의심증세가 처음 나타났다. 그러나 정부가 구제역에 대한 별도의 긴급 장관회의를 주재한 것은 구제역 발생 후 40일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구제역은 경기와 강원을 넘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말할 것도 없이 정부의 안이한 대처가 몰고 온 초등대응의 실패였다. 때늦은 백신접종 등이 맞물려 350여만 마리의 가축이 땅에 묻히고 3조원 이상의 피해를 가져온 최악의 재앙으로 이어졌다.
어떤 정부도 실패는 하기 마련이다. 실패에서 배우는 정부와 그렇지 못한 정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실제로 지난해 5월, 김포, 충북 충주 등에 발생했던 구제역의 발생원인과 전파 경로파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더 큰 재앙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구제역 파동에 대한 정부의 무원칙한 대응 못지않게 축산농가나 국민의 인식이나 협조도 낙제점이었다. 매뉴얼에 충실히 따라주었던 일본 국민들의 시민의식과는 너무 큰 차이가 났다. 일부 국민들 중에는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구제역의 확산을 방치했다는 황당한 이메일을 띄운 사례도 있다. 심지어 일부 농장주는 이동제한을 당한 출하차량을 버젓이 끌고 다닌 사례 등도 보고됐다.
일본의 위기대응에서 본받아야할 것이 많다. 프로이면서도 아마추어 같았던 일본 정부의 대처 능력과는 달리 재난 속에서 한결 같았던 일본인들의 프로같은 질서의식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부터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은 물론이고 정부차원에서도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타산지석의 가르침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