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위원 |
늘 명분이 필요했다. 고구려의 평양성 천도는 대동강 이남의 경제적 배경 확보와 통일이라는 요샛말로 당위성이 숨어 있었다. 고려 말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은 개경 세력을 꺾기 위한 시도였다. 평시의 천도는 대개 왕권 강화 수단이거나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됐다. 그런 선상에서는 “세종시 문제로 (정치적으로) 재미 좀 봤다”는 그렇게 욕먹을 일만이 아닐 수도 있다. 훗날의 평가는 물론 역사에 맡겨진다.
이와 관련해 다산 정약용은 웅진 천도로 한강 유역을 포기한 데서 백제 멸망의 원인을 찾지만 필자는 견해를 좀 달리한다. 한강도 지키고 금강도 지키면서 대동강도 차지한다는, 좋은 의미의 수평적 사고 쪽이다. 63년만에 성왕이 공주(웅진)에서 부여(사비)로 천도한 데는 군사적 이유 외에 전제왕권 확립 포석도 깔려 있었다.
그래선가. 감춰진 수도권적 발상이 알게 모르게 툭툭 튀어나온다. 충북 오송에 보건의료행정타운이 들어서고도 입주 기관들이 주요 볼일은 서울에서 본다는 서울 언론의 기사에는 이 같은 정형성이 잘 드러난다. <“서울 가셨는데요”… 오송은 '출장중'> 제목에는 의도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세종시에도 수도 분할의 성격이 전혀 없지는 않다. 도시를 한 문명의 중심에 놓이는 권력의 실체로 본다면 세종시도 결국 제2수도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 일본에선 수도 도쿄 일부의 오사카 이전론이 솔솔 흘러나온다. 후쿠시마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 세종시 이전과 이후도 다르다. 사견이지만 수도권의 백업 기능과 북진의 전진기지 활용 등 기능까지 추가돼야 한다.
“옥상에서 보면 세종시는 정원이에요”라던 전직 총리의 말이 생각난다. 고대 로마인들이 콜로세움을 중심으로 격자형 도시를 세웠다면 세종시는 정부청사를 중심으로 환상형(環狀形) 도시로 세워진다. 명품 도시, 외국인이 보면 입이 떡 벌어지는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됐으면 한다. 그 충격의 강도를 영화에 비유하면 '색·계'에서 탕웨이의 겨드랑이 털을 봤을 때만큼이나 크길 바란다.
세종시 안착의 전제는 '첫마을' 성공이다. 그런데 오늘 본지 시리즈 '정부, 세종시 중앙 공무원 이전 지원 손 놨나'를 보니 생각보다 덜 매끄럽다. '왕조'가 안 바뀌는 한 안 된다는 사고, '노무현이 파놓은 함정'이라는 논리라면 버릴 때도 됐다. 공무원의 무난한 입주에서 행정 비효율 대비책은 시작된다. 이 스마트 시대의 도시와 국가 경쟁력은 그 다음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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