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해경 대전문화예술의 전당 관장 |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 코너에 있는 이런 카피가 내 눈길을 끌었다.
'스무살, 내 청춘의 날들이여! 예순한 살의 대학총장의 신입생 되어보기 프로젝트'.
대학 총장이 다시 대학신입생이 된다니 그 발상이 기막혔고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어서일까 바로 궁금해졌다. 로저 마틴은 미국 하버드 신학교 부학장 그리고 모라비안 대학과 랜돌프메이컨 대학의 총장을 지냈으며 현재 역사학 명예 교수로 재직 중이다.
로저 마틴이 다시 대학 신입생으로 돌아가게 된 사연은 이렇다. 로저 마틴은 30여 년간 대학 교수와 총장으로 오직 학교 일에만 매달려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이 폐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되고 1년의 시한부 삶을 선고 받게 된다. 다행히 극적으로 살아났고 이후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환상에 도전하기로 마음먹는데 그게 바로 다시 대학신입생이 되는 것이었다.
로저 마틴이 선택한 대학은 수많은 고전을 읽어야만 하는 곳으로 유명한 세인트 존스 대학(St. John's College)이었다. 특별한 전공과목 없이 수업 시간에 일리아드 오딧세이 국가론 등 쟁쟁한 고전 작품을 읽고 토론해야하는 독특한 커리큘럼이 맘에 들어서였다. 이는 그 자신이 이미 베테랑 인문학자이지만 또다시 호메로스, 플라톤, 헤로도토스 등을 통해 삶의 의미를 더욱 명확히 하고 자신의 삶을 재정비하고픈 마음 때문이었다.
책은 여러부문에서 흥미로웠다. 우선 특별한 전공없이 졸업 때까지 100여 권의 고전을 읽어낸다는 세인트 존스 대학의 커리큘럼이 흥미로웠다. 모든 수업이 교수가 아닌 '튜터(tutor, 지도교수)'에 의해 진행되며 수업은 학생들간의 토론으로 그리고 튜터가 토론의 맥을 짚어가고 서포트하는 식으로 진행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이 대학이 심신의 조화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학창시절 만능 스포츠맨이었지만 이제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에서 하는 운동경기를 보는 것이 고작인 로저 마틴이 세인트 존스의 신입생이 된 후 매일 아침 2시간씩 노를 저어야하는 조정 선수에 지원해 열심히 활동하고 마침내 교내우승을 차지하는 과정은 가슴 뭉클 하기까지 했다. 책은 환갑을 넘긴 대학총장의 좌충우돌 대학신입생활 모습을 통해 세인트 존스 대학의 모토인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결코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가슴 깊이 묵직하게 남겨놓는다.
며칠 전 UST 초청으로 특강을 했다. 과학분야 석·박사들이 모인 대학원대학교로 우리나라 과학분야를 이끌어갈 미래의 석학들이 모인 곳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의하는 동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들이 자신의 분야 외엔 거의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책에 나타난 세인트 존스 대학의 커리큘럼이 맘에 들었던 이유는 적어도 그 대학 학생이라면 모든 분야에 균형을 이룬 인격체로 졸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기 때문이다.
최근 인문학의 중요성이 여기저기서 거론된다. 실용도 중요하지만 우선 삶의 이유와 근본을 정립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오는 29일부터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는 스프링페스티벌을 시작한다. 뮤지컬과 무용, 창극,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공연을 통해 삶을 되돌아볼 여유를 갖고 균형을 찾는 것. 요즘처럼 바쁜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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