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산일기 |
부산 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상과 국제비평가협회상, 모로코의 마라케쉬국제영화제 대상,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대상, 도빌아시안영화제 심사위원상, 오프플러스 카메라영화제 대상. 그리고 네티즌의 열렬한 지지.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무산일기’가 대전아트시네마 스크린에 떴다.
‘무산일기’는 ‘살아남기’다. 한 탈북 청년의 자본주의 적응기를 아프고 시리게, 나지막하게 그려낸다. 전혀 지루하지 않다. 순수한 영혼의 안쓰러운 추락을 사실감 넘치게 그려낸 장면들은 불편한 가슴을 들쑤시고 ‘우리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아프게 드러낸다.
승철을 흠씬 두들겨 팬 불량배들은 그를 벽으로 몰아붙이고는 커터 칼을 꺼내든다. “쑤시고 감방 가면 그만이야.…한 번 더 우리 구역에 전단지 붙였다간 피 볼 줄 알아.” 칼로 승철이 입고 있는 파란색 오리털 파카를 찢는다. 흰 오리털이 뜨거운 피처럼, 내장처럼 쏟아져 나온다. 불량배들이 떠나고 승철은 비틀거리며 한 짝만 달랑 남은 철문을 열어젖힌다. 승철의 눈앞엔 깎아지른 절벽과 거대한 구덩이가 펼쳐진다. 한 발만 더 내디뎠다간 굴러 떨어질 위태로운 순간, 머뭇거리던 잠시, 승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람들은 승철에게 “일하기 싫음 하지 마” “모른 척 해주세요”라고 다그친다. 승철은 점점 보이지 않는 ‘유령’이 돼간다. 탈북자들만 그러할까.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을 대입시켜도 영화의 울림은 잦아들지 않는다. ‘무산일기’의 여러 뛰어난 점 중 하나다.
반전이 충격적이다. 화면은 멈춰 섰지만 일어 설 수 없었다. 승철의 순수함만큼은 ‘무산(霧散)’,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기를 빌었다. 상영 시간을 꼭 확인하고 가시길. (042)472-1138.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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