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찬 대전대 교수 |
선유도의 북쪽에는 높이 152m의 우뚝 솟은 바위산이 하나 있다. 바위가 솟아오르다가 중간에서 갈라져 좌우에 각각 봉우리를 얹어놓았는데, 그래서 그 모습이 전라도 진안의 마이산과 닮았다. 섬에 있는 것으로 높이가 그 정도가 되면 제법 모양을 갖춘 산이 된다. 이름이 망주봉(望主峰)인데, 이곳으로 유배 온 선비가 그곳에 올라가 늘 한양 쪽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하곤 했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품은 이야기로 보면 서울의 북한산이나 영암에 있는 월출산을 연상하게 해주는 산이다.
어느 해 가을에 선유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돌올한 바위 봉우리가 눈앞을 가로막으며 한눈에 들어왔다.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는 망주봉에 얽힌 전설을 알지 못했고, 또 주변에서 들리는 말이 바위산이라 올라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별 수 없이 등산의 희망을 접고 자전거 하이킹으로 소풍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러한 생각이 스쳤다. “저 바위 절벽에도 봄이면 진달래꽃이 필까?”
선유도와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 등 다리로 연결된 섬들을 자전거로 달리며 즐기다가 다시 선유도로 돌아와 망주봉 뒤편으로 가보니, 맙소사 그쪽으로 등산로가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애석하게도 그날은 망주봉을 올라가지 못했다. 시간에 쫓겨 아무 준비도 없이 불쑥 찾아온 외방인에게 산은 쉽사리 길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헌화가를 부른 노인을 떠올렸다. 삼국유사 수로부인조에 등장하는 소를 끌고 가던 그 노인 말이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으로 가는 도중에 점심을 먹게 되었다. 옆으로 천 길 절벽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진달래꽃이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가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 꽃을 꺾어다 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따르는 무리들이 한결같은 대답을 했다. “사람이 발붙여 올라갈 데가 못 됩니다.” 그때 한 노인이 암소를 몰고 가다가 수로부인의 말을 듣고는 꽃을 꺾어 바쳤다. 그때 지어 부른 노래가 헌화가이다. 그 동네에 사는 노인일 테니 산길을 알았을 것이고 그러니 절벽을 기어올라 꽃을 꺾어 바친 것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노인의 힘이 빛을 발휘하던 때가 있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장로의 시대가 이어지기도 했다. 앨빈 토플러의 표현에 의하자면 적어도 제3의 물결이 밀려오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농경 아래에 있던 제1의 물결은 물론이고 산업 아래에 있던 제2의 물결 위에서도 노인의 지식과 지혜는 더없이 소중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존중의 대상이었다. 노인에 대한 공경은 이를테면 예절의 문제이기 이전에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첨단과학기술이 몰고 온 제3의 물결 위에서 노인의 자리를 찾아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며칠 전 통계청은 올 1분기 비경제활동 인구 및 그 중 대졸 이상 고학력자의 비율을 발표했다. 10년 전과 비교해볼 때 비경제활동 인구는 11% 남짓 늘어난 데 비해 대졸 이상 비경제활동 인구는 80% 증가했다는 비교 수치가 나왔다. 청년실업의 증가도 한몫을 했겠지만, 그러나 그보다는 베이비 붐 세대의 본격 은퇴 및 고령화가 그 같은 결과를 불러왔다고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오늘 아침 출근길도 지하철이었다. 대전의 서쪽 끝으로 집을 옮기고 나서 대전의 동쪽 끝에 있는 직장까지는 다행히도 도시철도가 연결되어 주로 그것을 이용하여 출근길을 잡는다. 적당히 붐비는 출근길의 지하철에서 보라색 띠로 단장한 경로석은 눈에 잘 띄지도 않을뿐더러 그 위에 앉아 있는 노인도 더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중늙은이인 나와 같이 서성이고 있거나 일반석 어느 귀퉁이에 끼여 있을 따름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도 노인들을 위한 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이어폰을 꽂고 열심히 스마트폰을 밀어대는 신인류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나저나, 계룡산 오누이탑 근처 바위벼랑 위에도 하마 지금쯤이면 진달래꽃이 피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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