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한호 침례신학대 총장 |
이 사태에 대한 각종 언론 보도를 보면서 필자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여론이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리고 또한 너무 쉽게 희생양을 만들어 광야로 내쫓으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론은 시작부터 '총장 전횡', '서남표 총장 사퇴 한 목소리', '서총장 사태 수습 후 사퇴 시사'등 모든 책임을 총장에게 지우고 사퇴를 기정사실화 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가정의 불상사가 가장의 책임인 것처럼 대학의 불상사는 모두 총장의 책임이며 해결의 열쇠를 가진 이도 총장이다.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일을 한 총장은 당연히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사태의 진상부터 검토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먼저 성적과 연관지어 차등적으로 등록금을 부과하는 소위 '징벌적 등록금 제도'부터 생각해 보자. 이 제도는 부과하는 대학 당국도 고심 끝에 세운 정책이었을 것이며 부과 받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개인에 따라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제도였을 것이다. 평생 수재로 인정받으면서 공부해오다가 바라던 대학에 입학해서 느닷없이 성적과 관련되어서 차등 등록을 해야 한다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총장과 대학에 이런 제도를 도입한 동기를 물어야 한다. 그 목적은 아마 경쟁을 통해 학생들의 천재성을 키워나가고, 혹 천재가 가지기 쉬운 나태함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교육자의 단호한 의지일 것이다. 이 제도가 학생 개인의 개성과 배경을 고려하는 범위에서 신축성 있게 시행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가질 수는 있겠으나 그 제도 자체를 '총장의 전횡'이란 말로 정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징벌적 등록금'이라는 표현은 총장이나 대학이 만든 말이 아니라 이 문제가 여론화 되는 과정에서 누구인가에 의해 만들어진 표현일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지식인들로 구성된 한 독서토론 그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사 기관이 '가칭'이라면서 붙여준 '인민혁명당(인혁당)'이라는 명칭이 그 피의자들을 국민의 적으로 인식하게 했고,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도 국민들을 냉담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징벌적'이란 표현 역시 우리를 섬뜩하게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차등 등록금제'가 타당한 표현일 것이다.
다음으로 영어강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소위 글로벌 시대는 아무리 훌륭한 학자라 할지라도 연구결과를 영어로 자유롭게 발표하지 못하면 한낱 지역 천재에 불과하다. 국제 학술대회에 나가보면 한국은 모든 면에서 자격을 갖추고도 언어 때문에 아시아 지역에서마저 소외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202개 대학 중에는, 필자가 알기로, 영어만으로 수업을 하는 대학이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는 언어에서부터 벌써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뒤처져서 출발선에 서 있다. 우리나라의 문학인, 정치인, 예술가와 과학자들이 업적에 비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언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국민은 과기대 학생들이 전공분야의 학문뿐 아니라 언어에도 더 정진해서 과학입국의 선봉 주자가 되는 것은 물론 명실공히 글로벌 리더십이 되어주기 바란다.
셋째로, 학생의 자살 원인을 모두 영어강좌와 차등 등록금 제도에 귀의시키려는 생각은 속단일 것이다. 총명한 젊은이들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한 데는 알려지지 않은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만인의 부러움을 사며 KAIST에 당당히 입학한 수재 젊은이들이 공부가 힘들고 자존심이 상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목숨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학 당국과 관련 기관은 여러 각도에서 그 원인을 규명한 후에 결론을 내리고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국회 '교과위'가 서남표 총장을 소환해서 벌인 질의응답은 대부분 요긴한 것이었다고 생각되지만 몇몇 의원들은 대학의 총장을 마치 피의자를 심문하듯 하고 모욕에 가까운 질문을 퍼부었다. 한 평생 과학과 교육에 헌신한 노학자를 범죄인처럼 지탄하고 몰아세울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지금 KAIST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를 안고 분투하고 있다는 시각으로 이 문제를 보아야 할 것이다. 새로 구성된 '혁신비상위원회'가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해서 꼬인 매듭을 대학이 스스로 풀어 나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우리의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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