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정우 박사는 서울대학교에서 공학과 미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역임한 뒤 2000년 최초의 대안철학학교인 철학아카데미를 창설해 현재까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담론의 공간'을 비롯해 가로지르기, 시뮬라크르의 시대, 삶, 죽음, 운명, 접힘과 펼쳐짐, 주름, 갈래, 울림 등을 출간하여 한국 철학담론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했다.
▲ 탐독 |
이정우 박사가 본격적으로 책의 세계에 파묻히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서재에는 근현대 한국 문학을 모아놓은 시리즈들, 조선시대를 수놓은 각종 문집들, 중국의 고전소설들, 세계문학대계, 제자백가들의 저작들, 유학 관련 고전들, 각종 형태의 옥편과 자전들, 백과사전들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그런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정우 박사는 아버지의 서재를 그의 독서와 사유가 태어난 지성의 모태라고 했다.
그의 독서편력은 문학에서 시작한다. 화수분, 운수좋은 날 등 한국의 단편소설부터 시작하여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등 한자 문화권의 고전, 영어권의 셰익스피어 전집, 독일어권의 파우스트, 인도어권의 마하바라타, 아랍어권의 아라비안 나이트 등 세계문학으로 그의 독서 유목은 시공을 가로지른다. 그의 독서목록에는 적과 흑, 제인에어, 폭풍의 언덕, 좁은 문과 전원교향악, 전쟁과 평화, 안나까레니나, 부활, 까라마조프의 형제들과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 제목들도 숱하게 들어 있다. 그는 앙게보르크 바하만과 휠덜린의 작품들을 섭렵하며 한 동안 독일 시에 심취했다.
그의 독서 유목은 문학에 머물지 않고 공대 입학을 계기로 과학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의 사유세계를 탄탄하게 받히고 있는 과학지식은 그가 인문학과 과학의 진정한 통섭을 이루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인간을 이해하려면 세 층위의 지식들이 복합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층위는 기저 담론으로서의 생명과학, 두 번째 층위는 일반적인 담론으로서 언어학, 심리학, 사회학, 정신분석학, 인류학 등 인간이라는 존재를 일반적이고 법칙적인 층위에서 연구하는 인간과학, 세 번째 층위는 구체 담론으로서의 역사 및 문화 연구가 어우러져야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생명과학은 직접 인간을 다루지는 않지만 인간도 한 측면에서는 생명체이므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기저를 제공해준다. 인간과학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언어, 심리, 사회관계, 무의식 등 다양한 차원에서 해명해준다. 그리고 인문학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이나 인물들, 문학적 텍스트들, 예술작품 등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존재들을 다룬다. 이 세 차원의 지식들이 골고루 소화되고 입체적으로 종합되었을 때 비로소 인간이라는 존재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우 교수의 지식 가로지르기는 항상 인간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코 어떤 한 담론으로 해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생물학, 인류학, 언어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정치경제학, 사회학, 역사, 문학, 문화 연구들을 비롯한 다양한 담론들을 가로지르면서 그런 성과들이 철학적 사유를 매개로 정리되어야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수학,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역사, 사회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영향을 끼친 사유들을 두루 섭렵해온 그는 학문의 세계를 “선택하지 말고 창조하라”고 권한다. 그가 원하는 철학은 세계, 인간, 역사의 근저를 파고드는 사유,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과 같은 다른 실증과학들을 충분히 섭렵하고 문학적 생기가 넘치는 사유를 하고 싶어 했다. 그는 지금도 철학적 깊이와 과학적 근거 그리고 문학적 생기를 모두를 갖춘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