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영 미술학 박사·평론가 |
“내가 그런 거(해프닝, 이벤트 등의 실행)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했기 때문에 19751225 멤버들이 주관자가 되고 나는 보조자가 된 거죠. 재밌는 현상은 나중에는 이들이 나보다 더 적극적이 되어서 종이에 불 붙여서 태우기도 하고, 나중에 모여서 공부도 하고 그랬었죠.”
19751225 멤버들은 내탑에서 두 종류의 이벤트를 선보였다.
첫 번째는 비스듬한 자갈 언덕 중턱에서 나무 봉에 종이를 말아 불을 붙이는 작업으로 행위가 곁들여진 설치를 하였고, 두 번째는 강변에 종이를 10여m 늘어놓고 불을 붙여 물리적이며 현상적인 비물질을 이용한 이벤트를 선보였다.
사진들을 보면 불 붙은 종이들은 순식간에 타들어 가면서 바람에 의해 연기가 일정한 방향으로 쏠려 올라갔으며, 바닥에서 빠르게 불탄 종이 재들은 일정한 수평의 모양들이 만들어져 강가로 향하고 있어 인간의 허무성을 내포하는 작업들이었다.
이러한 비물질성을 실험했던 한국 작가로는 이승택이 있었었는데, 미국 조각가 멜 존슨이 언급한 새로운 조각 개념 즉 뜬다거나 공중에 날거나 혹은 걸리거나 냄새를 발산하거나 하는 개념과 키네틱 조각의 특징인 비물질적 에너지에 의해 움직이는 쉐페르 작품을 자신이 한국적 작품으로 전환하여 표현하였다.
19751225의 내탑 작업은 이승택이 1968년 굵은 밧줄에 삼베를 묶어 길을 따라 바닥에 설치한 '생과 사'와 유사하다.
단지 19751225는 강을 향하게 했으며, 종이를 태워 재를 남겨 놓았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김구림이 1970년 4월 11일 한양대 앞 강나루 건너편 살곳이다리 옆 제방에서 휴지로 삼각형 모양을 만들어 놓고 잔디에 석유를 뿌려 태워 시커먼 초대형 삼각형 흔적을 제작했는데 이 작품의 제목은 '현상에서 흔적으로'였다.
그런데 19751225 멤버들이 내탑에서 종이를 태우고 흔적만 남긴 '계획적인 흔적' 제목과 불을 이용해 모양을 만든다는 계획에서도 유사성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어찌 되었든 19751225의 내탑 이벤트는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본질적인 물음과 만나게 해주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는 데, 대전에서 비물질을 이용하며 한국미술계의 흐름과 함께 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전 현대미술의 역사에서는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19751225 멤버들의 왕성한 활동 때문에 당시 월간지였던 '미술과 생활'이라는 잡지에 그룹이 소개되는 일도 있었다고 정장직은 말한다.
“지금으로 보면 '월간미술'같은 잡지였죠. 이 당시 창간호가 나왔는데, 김수평 교수가 편집위원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19751225를 소개했죠. '미술과 생활' 주간은 임영방(서울대 미학과 교수)이었고, 잡지는 주로 서울대 미대 위주로 만들어졌던 때였기 때문에 소개되어 매우 기뻤죠. 당시 19751225가 큰 철학적 배경이 있었겠습니까. 19751225의 뿌리는 독일에서 공부한 김수평 교수님이죠. 밑도 끝도 없이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기사의 내용에서도 보다시피 19751225 멤버들 모습은 취리히 다다이스트와 비교해볼 수 있다.
특히나 정장직은 다다이스트 피카비아를 좋아했다.
이 영향으로 피카비아 책을 구하고, 번역하여 대학원(홍익대 대학원) 논문을 쓸 정도였다. 정길호나 이종협도 다다 쪽이었지만 정장직과는 좀 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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