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방사능과 공존하며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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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방사능과 공존하며 사는 법

  • 승인 2011-04-13 14:26
  • 신문게재 2011-04-14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매일 2ℓ씩 2년 간 빗물' 식 비교 보도에 어느 신문사 정수기에 빗물을 채우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거 쉽지 않다. 서재에 붙여둔 연암 박지원의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을 훑어 읽는다. 문장은 부대의 대오 행진, 빛나는 표현은 진군나팔이나 북, 비유는 유격의 기병…. 저처럼 단단한 논리로 무장하고 전투적으로 글 쓸 때까지 떼내지 않으리라.

▲ 최충식 논설위원
▲ 최충식 논설위원
그러나 그도 잠시, 홈쇼핑의 화려한 말치레에 생각이 싹 바뀐다. “원 플러스 원(1+1)! 이런 기회, 우주침공이 있어도 없습니다.” 뻔한 입담에 전화번호를 꾹꾹 누른다. 성벽에 사다리 걸치고 올라온 적에게 생포되고 만 것이다. 마감시간 임박해 상품이 동이 나니 사야겠다는 심리가 즉각 발동한다. 실은 그 상품이 끌려 '마지막 기회'라는 '절판 마케팅'에 넘어가줬다.

이렇게 변명해보지만 세일 품목 잡으려고 아침도 굶고 늘어선 동네 아주머니 행동파 부대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선착순'이 끝나고 원가 환원되는 영(0) 상태를 마이너스로 여기는 그네들에게 “따뜻할 때 드세요”는 시간의 희소성을 알리는 진군나팔과 같다. '식기 전에 먹자' 심리가 동한다. 이제, 나팔소리 퍼지자 방사능 마케팅이라는 시뻘건 대장기를 흔들어댄다. 시금치와 상추에서 미량의 방사능이 첫 검출됐다 하자 장아찌를 노리는 이웃들이 어느새 알고 모여든다.

천일염을 듬뿍 써서 좋다는 거다. 생각의 틀, 전문용어로 '프레임'이란 무섭고도 가소롭다. 사재기로 웬만한 천일염 소금창고는 바닥을 드러냈다. 태안 자염(바닷물을 졸인 소금) 생산업자들도 즐거운 비명이라는데, 문제는 과잉이다. 기존 관념에 묶여 정보처리에 게으른 '인지적인 구두쇠'가 늘고 있다. 위험해, 위험하다구… 북 치고 장구 치며 문풍지에까지 '방사능 방호효과' 문구가 붙는다.

여기엔 인간 본연의 두려움의 뼈대를 맞춘 공포마케팅(risk market)과 공상적 공포문화의 살을 붙인 기생마케팅의 조합이 있다. 설렁탕도 못 사먹는 비참한 노년을 맞을 거냐며 은근히 겁주는 보험 가입 권유와는 차원이 다르게 치고 빠지는 게릴라마케팅 솜씨가 대단하다. 그러다가 방사능 색깔론이 삐져나왔다.

방사능에 관한 한, 수학자 앨런 튜링의 추측처럼 '예(1)'와 '아니오(0)'로만 대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권위와 공신력을 갖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분석은 안 믿고, 요오드 성분이 치료제의 5400분의 1인 보조식품이 방사능 특효약이라는 꼬임을 믿는 것부터 잘못됐다. 그러니 비타민C 제품이 방사능 예방제로 둔갑하는 일이 예사로 가능하다. 합력하여 선(善)을 이루는, 즉 경제학적 용어로 시너지처럼 보여도 일시적이다. 원자폭탄이 터진 양 위험을 위장하고 과도한 불안감을 갖는 것이 미량의 방사능보다 수천, 수만 배 해롭다. 루머의 진지를 쌓고 괴담의 교두보를 삼으려는 저급한 수작에 당장 퇴각의 북을 칠 일이다.

안전에 대한 완전한 확신도, 비 한 방울도 안 된다는 불신도 이롭지 않다. 다행히 우리 뇌는 불분명한 정보를 유연하게 걸러내 해답을 얻는 장점을 가졌다. 사실에 근거해 위험요소를 가려내고 철저히 대비해야 현명하다는 것도 안다. 언제까지나 '유해한 하늘'(Toxic sky, ※필자 표현)을 올려다보며 살려는가. '방사능'이 임팩트 있는 단어로 급부상한 오늘, 정말 절실한 건 '안전마케팅'이다. 소비시장에서 연인처럼 다정한 도둑이 되자는 게 마케팅의 기본 아닌가.

자, 그러면 화려한 말솜씨냐 신중한 분석이냐. 대장군의 상징인 소단적치, 그 붉은 깃발이 양쪽에 펄럭이면 어디로 향할지는 너무 확실해졌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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