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앞선 자와 뒤따르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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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앞선 자와 뒤따르는 자

[목요세평]김원배 목원대 총장

  • 승인 2011-04-13 13:59
  • 신문게재 2011-04-14 20면
  • 김원배 목원대 총장김원배 목원대 총장
▲ 김원배 목원대 총장
▲ 김원배 목원대 총장
토요일에 아내와 함께 수통골에 다녀왔다. 도덕봉을 지나 금수봉으로, 다시 빈계산 정상을 거쳐 내려오는 코스였다. 가지고 간 김밥 두 줄과 한라봉 두어 개를 먹고 커피도 두 잔이나 마신 후 하산하니 다섯 시간은 족히 걸렸다. 군데군데 진흙길이 있긴 하지만 도덕봉에서 내려와 자티고개까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좌우가 내려다보이는 것이 시원하면서도 아늑하였다.

등산하는 내내 아내는 한 번도 앞장을 서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곳 지리를 모르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번 갔던 코스를 반대로 오르는 길이니 이제 어디가 어딘지 알 법도 한데 그냥 뒤따라온다. 그런데 어느 구간에서는 처음 오는 길 같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애초부터 길을 알려고 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뒤따라오는 자의 안일(安逸)함 이랄까?

문득 배리 다니엘스(Barry Daniels)의 우화가 생각났다. 어느 박물학자가 아마존 강변을 탐사하다가 등이 형형색색인 아름다운 풍뎅이 무리를 발견하였다. 아직 학계에 한 번도 보고되지 않은 그 풍뎅이를 자세히 관찰해 보니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이들은 더듬이를 다른 풍뎅이의 뒷다리에 걸고 일렬로 줄을 지어 먹이를 찾아 먹는 습성이 있었다. 물론 맨 앞에서는 무리 중에서 가장 크고 힘센 풍뎅이가 앞장을 섰다.

그러나 몇 년 뒤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그 박물학자는 사방을 아무리 뒤져봐도 단 하나의 풍뎅이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박물학자는 그 풍뎅이의 멸종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느 날 풍뎅이들의 행렬이 한데 합쳐져 아주 긴 줄을 이루더니 급기야는 맨 앞줄에 서 있던 풍뎅이가 자기 줄의 꼬리에 있는 풍뎅이의 뒷다리에 더듬이를 부착하는 일이 일어났다. 거대한 원이 제자리를 맴도는 동안 먹이는 부족해지고 굶어죽은 채 끌려가던 풍뎅이들이 늘어나면서 더 이상 전진할 수 없게 된 풍뎅이들이 그대로 모두 굶어죽었다는 것이다.

앞장 선 자의 책임 못지않게 뒤따르는 자의 책임 또한 크다. 앞장 선 자는 뒤 따라오는 사람들이 그를 믿고 무작정 따라올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앞선 자들이 어떤 중요한 정책을 추진할 때는 특별히 더 심사숙고해야한다. 그렇게 많이 생각을 했는데도 그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에는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의 타당성과 현실성을 면밀히 재검토하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자기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상종하지 않으려 하거나 서둘러 실행함으로써 그 타당성을 증명하려 해서도 안 된다.

뒤따르는 자의 책임 또한 크다. 누군가가 앞장을 서게 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가끔은 누군가는 앞장서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 경우도 허다하다. 앞장선 자가 비록 한 나라의 통치자라 하더라도 신이 아닌 이상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모두 완벽할 것이라고 단정하고 그냥 따라가서는 안 된다. 지도자가 거느리고 있는 소수의 자문역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명심하고 그런 것들이 보이면 여론의 뭇매를 각오하고라도 즉시 지적하는 것이 뒤따르는 자의 책임이다.

어느 날 은퇴한 노교수와 식탁에 동석한 적이 있었다. 그분께서 작년에 출간한 책을 거론하며 요즘도 글을 쓰시느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최근 어느 대학에서 한 교수가 폭력교수로 낙인 찍혀 강단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여론의 일방적임에 놀라고 또 한편으로는 그 여론을 거스르지 못하고 신속하게 그에게 파면이라고 하는 중징계를 내린 그 대학의 처사에 놀랐다고 한다. 당신만이라도 그걸 반박하는 글을 써서 몇몇 언론에 투고를 하려했지만 허사였다면서, 어떻게 그런 문제에 모두가 똑같은 의견을 가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혀를 차는 것이었다.

보도된 내용으로만 보면 만인의 지탄을 받아 마땅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좀 더 차분히 생각해 보면 파렴치범도 아니고 학생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의욕이 다소 지나쳤을 뿐일 수도 있는 한 사람을 두고 그렇게 도리깨질을 해대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하는 지적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가지고 어디로 가겠단 말인가?

원을 그리며 빙빙 돌던 풍뎅이들 중 한 마리만 뛰쳐나왔더라면 멸종은 면했을 것이라면서 다니엘스는 풍뎅이 이야기를 이렇게 끝맺는다. '움직인다는 것이 반드시 어딘가를 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라면 뛴다한들 더 빨리 갈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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