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백아와 종자기가 마냥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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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백아와 종자기가 마냥 부럽습니다

[문화초대석]김진호 연정국악문화회관 관장

  • 승인 2011-04-10 17:06
  • 신문게재 2011-04-11 20면
  • 김진호 연정국악문화회관 관장김진호 연정국악문화회관 관장
▲ 김진호 연정국악문화회관 관장
▲ 김진호 연정국악문화회관 관장
「열자」의 ‘탕문 편’에는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친구 종자기(鍾子期)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백아가 산을 떠올리며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는 옆에서 이렇게 찬탄했다. ‘좋구나. 태산이 눈앞에 아른거리는구나!’ 이번에는 백아가 강물을 상상하며 연주를 하니 종자기가 무릎을 쳤다. ‘멋지다. 장강이 출렁거리는구나!’

어느 날 두 사람이 놀러갔다가 비를 만나 동굴 속으로 피했다. 빗소리에 맞춰 백아가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는 ‘장맛비가 구슬프구나!’ 하고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곡을 연주 하자 이번에는 ‘산이 무너지는 듯하구나!’라며 탄식했다. 앞의 것은 ‘임우지곡’이고 뒤는 ‘붕산지곡’인데 종자기는 족집게처럼 정확히 알아맞혔다.

그런데 하루는 종자기가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오늘은 자네의 거문고 소리에서 살기가 느꼈는데.’ 왜냐고 물었다. 그러자 백아는 ‘잠시 전에 거문고를 연주할 때, 저기 저 앞마당 감나무 까치둥지에서 큰 구렁이가 알을 훔쳐 먹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내 마음이 영 편치 않았는데 아마 그때문인가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얼마 후 종자기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백아는 이제 내 거문고 소리를 들려줄 사람이 없다며 거문고를 깨뜨리고 현을 잘라 버린 후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오늘날 단금과 백아파금으로 회자되고 있다. 진정한 친구는 소리만 듣고도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는 이 이야기를 우리는 지음(知音)이라 부른다.

뜬금없이 웬 백아와 종자기 이야기를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문고 소리만 듣고 친구의 마음을 아는 백아와 종자기는 아니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사오정취급을 당하는 소통부재의 한국사회가 새겨들어야 할 경구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자긍심 하나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오 천년을 이어온 민족의 숨결인데...
어쩌다. 이렇게 나만 잘났다고 떠드는 텔레토비 왕국이 되었을까? 혹여 가족들과 함께 뉴스시간이라도 맞닥치면 여간 보기가 민망한 게 아니다. 좀 더 희망적이고 살맛나는 이야기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그 많은 소식들이 온통 3류 소설 같은 저급한 이야기만 토하고 있다. 이제 정말 역겹다. 구역질이 난다.

살아 숨 쉬는 것 말고는 온전한 게 하나 없는 요지경 같은 세상이다. 이젠, 종말론 자들이 쓸데없이 지껄이는「말세」라는 말까지 뇌리를 엄습해온다. 정말이지 우리가 이래도 되는지를 모르겠다. 선조들이 피를 흘린 댓 가로 잠시 빌려 쓰고 있는 이 강산을, 이 민족을 이렇게 헌신짝처럼 가벼이 생각하고 살아도 되는 건지 말이다.
후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투영될지를 티끌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일을 모르는 하루살이처럼 순간만 버티며 사는 우리들의 삶에서 과연 이 민족의 미래와 우리 후손들의 행복한 삶이 담보될 수가 있을까? 누구를 더 나무라고 누구를 덜 나무래야 할지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그 말, 그 말이 쾌도난마와 같이 얽히고설킨 한국사회의 해법이다. 36년 식민통치와 100만 남경대학살까지도 모르쇠 하던 희대의 전범국 일본이 당하는 대지진과 원전 피해를 똑똑히 기억해야한다. 저지른 죄 값으로 되돌려 받는다는 앙화를 자초한 일본의 뒤를 따르지 않으려면, 우리는 국가도 개인도 모두 더 진솔한 삶을 살아야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백아를 좀 닮았으면 좋겠다.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라는 당신네도 마찬가지다. 백성들이 당신네 거문고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거든, 그렇거든 차라리 백아처럼 연주자이기를 스스로 포기 하라. 그리고 한 발짝 물러서 보라. 들어주는 이도 없는 연주자가 얼마나 불쌍한 건지...그 관객은 또 얼마나 불행할지...한 번 곱씹어보라.

비록 이야기이긴 하지만, 백아와 종자기라는 친구처럼 서로 마음이 통하는 그런 세상! 우리 앞에 그런 꿈같은 세상은 정말 요원한 것 일까? 해피 앤딩으로 끝나는 드라마 같은 세상을 위하여, 맥도모르고 침 대롱만 들고 날뛰는 위정자들! 평생 책 한권 읽고 고집까지 센 지식인들! 그런 쓸데없는 사람들만 쓸어갈 초강력 쓰나미는 어디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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