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청나 전농충남도연맹 정책실장 |
이명박 대통령과 정치권은 “헌정사에 길이 남을 농협개혁”이라며 이번 개정안에 대해 대단한 평가를 하고 있다. 반면에 농민단체들은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개정안”이라며 이번 개정안을 개악안이라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경제적 약자인 농민들을 위해 조직된 '협동조합 정신'은 사라지고 경쟁과 자본만 남았다는 것이다.
농협중앙회의 주요구성원인 농민들이 개탄하는 상황에서, 청와대와 국회의 평가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농민들이 바라는 농협개혁은 '농산물을 제값받고 팔아주는 농협으로 바꾸는 것'. 그래서 농민들은 경제사업보다는 돈장사에 눈이 먼 농협중앙회를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시켜 경제사업 활성화를 도모하자고 주장해왔다.
이번 개정안을 두고 일각에서는 오랜 숙원이던 신경분리 문제가 일단락 된 점을 환영하고 지금부터라도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힘쓰자고 여론을 형성하고 있으나, 이번 개정 농협법에 농민이 바라는 개혁은 없다. 농민들이 지금까지 외쳐온 '신경분리'로 겉껍질을 포장했지만 알맹이는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를 따르는 지주회사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지주회사는 이윤추구가 목적이기에 경제사업 전체를 지주회사화하여 사업할 경우 조합원은 이익창출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농민들의 농산물을 제값에 팔아주기 보다는 더 낮은 값에 농산물을 사들이고,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더 많은 수익 창출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에서 중앙회의 독점적 지위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번 농협법 개정으로 농협중앙회는 금융지주회사와 경제지주회사를 거느리게 됐고, 수익이 최대목표가 될 경제지주회사방식은 자칫 지역농협의 경제사업과 또다른 경쟁체제를 갖출 우려가 만연해 있다. 그렇게 된다면 자본의 우위에 있는 농협중앙회의 경제지주회사에 지역농협의 경제사업이 잠식 당할 것은 뻔한 일이다.
지금도 농협중앙회는 '자금'을 미끼로 지역농협들에 대한 줄세우기와 길들이기로 인해 회원조합은 조합원의 의지대로 운영되기보다 중앙회의 입맛대로 운영되어 왔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농협중앙회의 거대한 권력을 지역농협과 조합원들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그러나 개정안으로 중앙회는 더욱 비대해 졌다.
농협 금융사업에도 날개를 달아줬다. 이번 개정안으로 농협은 내년 3월 KB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에 이어 200조원대 자산을 보유한 금융지주회사로 도약하게 된다.
김태영 농협중앙회 신용대표는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 직후 “금융지주회사가 출범하면 프랑스 1위 금융그룹인 크레디아그리콜(CA)처럼 국제 경쟁력을 갖춘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금융업계 내에서 조차 “금융지주회사가 설립되면 농협의 금융사업은 날개를 달겠지만 농민을 위한다는 본래의 취지는 무색해 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존재' 농협에 대한 농민들의 시각이다. 농협개혁에 관계된 일이라면 아무리 바빠도 꼭 함께 해왔던 것도 그런 이유다. 얼마 전 충남도청에서는 개정 농협법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했다. 농민들은 제외된 채, 공무원들만이 대상이었다.
농림부 관계자는 이미 법이 통과된 상황이기에 농민들에게 설명회를 개최하기 보다는 이를 집행해야할 공무원들에게 설명회를 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궁색하기 그지없다. 협동조합의 최대 당사자인 농민들의 바람이 휴지조각 되고, 의견 수렴 과정조차 진행되지 않았던 이번 농협법 개정. '비싼 무기 사들이는 것이 국방개혁이고 재벌들 특혜 주는 것이 경제개혁'이 된 세상에서 이번 개정안이 개혁안이라 불리는 것을 그저 시대적 조류라 인식해야 할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