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 |
제1차 세계대전은 사라예보에서 울린 한 방의 총성으로 시작됐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저격당했고,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쟁은 시작되었다. 여러 나라가 연합국과 동맹국으로 갈라져 싸웠으며, 이 전쟁으로 인해 900여 만 명이 전사하는 등 33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우발적으로 시작된 조그마한 사건이 세계 전쟁으로 비화한 대표적 사례다. 나비효과다.
튀니지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한 청년의 분신이 23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벤 알리 대통령을 축출하였다. '재스민 혁명'이라 불리는 민주화의 불길은 이웃 나라 이집트로 번져 30년의 무바라크 독재정치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현재 내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리비아 사태도 42년의 철권통치를 해온 카다피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외에도 시리아, 바레인, 예멘 등 중동 지역에서 불고 있는 민주화 바람은 이제는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거대한 폭풍이 되고 있다. 역시 나비효과다.
1년 전 천안함 침몰사건이, 4개월 전에는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하였다. 두 사건을 계기로 MB 정부 들어 그렇지 않아도 삐걱거리던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을 통해 형성되었던 평화와 공존의 남북관계가 이제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걱정하는 상태가 되었다.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전략문제연구소도 한반도가 한국전쟁 이후 어느 때보다 위험한 곳이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본원적 존재 이유는 대내외적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이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게 하는 것일텐데 현 정부는 국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불안하게 하고 있다. 평화를 만들지는 못할망정 이미 구축되어 있는 평화도 관리하지 못하는 안보무능 정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안보를 일차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김관진 국방장관은 북한이 도발하면 현장에서 '쏠까요, 말까요'를 묻지 말고 '선조치 후보고'하라고 일선 지휘관들에게 단호하게 지시했다. 여기에 편승하여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등은 북한이 도발하는 경우에 몇 배의 무력보복을 해야 한다고 강경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매우 무모하고 무책임하다.
작금의 한반도 정세가 어떠한가? 남북 간의 대화는 단절되고, 서로에게 험한 비난과 적대적 행위가 일상화되고 있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남북의 우발적인 충돌이 전면적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것은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정부와 여당의 일차적 책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전수칙에 얽매이지 말고 '현장에서 먼저 쏘고, 나중에 보고하라'는 지시나, 응징 차원에서 '몇 배의 보복' 운운하는 발언은 너무나 무모하다. 이런 식의 대응이라면 현장에서의 작은 실수나 오발사고가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국가안보는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신속한 응징이 아니라 적절한 대응이, 조건반사적인 반응이 아니라 냉철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일 사소한 충돌이 확전으로 번지게 되면 그 책임을 일선 지휘관에게 묻겠다는 것인가? 너무 무책임하다.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라고 한다. 휴전선을 경계로 하여 남북의 첨단무기가 집중 배치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서해 5도를 중심으로 간헐적인 무력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작은 충돌이 전면적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거대한 토네이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남북 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서로 간에 불신과 적대감이 높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국가안보를 나비효과의 불확실성과 악순환에 맡겨둘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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