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날아간 신공항 공약,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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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날아간 신공항 공약, 그리고…

  • 승인 2011-03-30 15:19
  • 신문게재 2011-03-31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여보, 딸에게 잘해줄 마지막 기회네요.” 이 한마디 베갯밑공사로 오동나무 장롱에다 이것저것 사다 보니 기둥뿌리 뽑히게 생겼다. 소위 '딸의 결혼식 증후군'과 유사한 현상에 이 나라가 중병을 앓고 있다. 잘못된 '머슴들' 때문이다. ('주인들' 때문인가?) 선거 기법상 “머슴이 되겠습니다”는 고도의 심리조작 효과를 발휘했지만…. 신공항은 날아갔다.

▲ 최충식 논설위원
▲ 최충식 논설위원
머슴이 되겠습니다! 하면서 납작 엎드려 물질적 가치가 담긴 보따리까지 안겨주면 효과는 배가된다. 영남권끼리 치고받는 신공항, 영·호남 대결로 치닫는 LH, 충청 대 비(非)충청권이 세 대결을 벌이는 과학벨트의 탄생 배경도 이와 비슷하다. 한때는 달콤했으나 원점 재검토와 백지화라는 이름의 대가는 너무 쓰다. 이 살벌한 싸움에는, 전쟁을 낳고 왕국을 무너뜨리기도 하는 사랑처럼 뇌 속 특별한 화학물질과 회로가 작동하는 로맨스적 요소는 없다. 그런 채로 동은 동, 서는 서대로 찢어져 반목한다. 신공항을 싸고 TK(대구·경북)는 밀양을 밀고 PK(부산·경남)는 가덕도를 밀었다. 표면적인 대립이 아닌 죽기 살기 식 국책사업은 산으로 간다. '우리나라'가 없고 '내 지역'만 있다.

약은 그저 바람 잘 날 없는 갈등 이슈의 원천이다. 그 백지화 쓰나미에 30일 동남권 신공항 공약이 휩쓸려갔다. 경제성 미흡을 이유로 실체 없는 공약은 종언을 고했으나 문제는 더 커졌다. 특히 신공항 백지화로 들끓는 민심의 불똥이 애먼 충청권으로 튈 수도 있다. 그러잖아도 영남권 시·도는 멀쩡한 과학벨트에 열심히 짬짜미하던 중이었다. 국가백년대계, 국민통합, 국가균형발전의 가치들은 가식적인 수사가 되고 말았다.

전선은 또한 분화를 거듭하고 있다. 권역별로, 광역시·도나 시·군으로도 갈려 싸운다. 원전 부지를 놓고 강원 삼척, 경북 영덕, 울진이 다투고 있다. 전북의 군산공항 국제선 추진에 맞서 무안공항이 죽을세라 저지하는 광주·전남의 마찰, 수도권 전철 청주국제공항 연장 노선을 둘러싼 천안, 연기, 청주, 오창 등 소지역 간 충돌, 신강릉역 부지 재결정과 관련한 민·관, 민·민 갈등 등, 하나하나 지목하기조차 힘들다.

지역마다 공약의 텍스트가 품고 있는 의미는 약간씩 다르다. 그러면서도 정쟁과 지역갈등의 도구인 공약은 이미 만신창이다. 신공항 백지화 땜질용으로 대구·경북 쪽에 과학벨트를 뚝 떼준다는, 죽도 밥도 아닌 그림까지 그려진다. 제 지역구만 눈에 보이는 정치인들은 아예 트러블 메이커 역을 자처하고 나선다. 요동치는 민심을 업은 정치인들의 '결사항전' 패턴에도 대의민주주의의 메커니즘이 숨어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지만 선거와 경제위기 뒤끝엔 늘 공통의 요소가 있다. 시차를 두고 반드시 뒤따르는 정책의 쓰디쓴 대가다. 그 유명한 “다리를 만들겠습니다”, “강이라도 만들겠습니다”의 레퍼토리에 빠져 허적대느라 4대강 하나 빼곤 온전한 공약이 없다 할 만큼 상황 수습이 안 되고 있다. “대통령 하는 대로 따라가면 망한다”는 여당 의원을 보면 공약 때문에 거지반 콩가루 집안 신세가 된 듯하다.

신공항이 '신(新)공황' 된 것도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물론 100% 득(得)만 있는 선택은 없다. 하지만 남발된 공약의 죄과로 대한민국은 어디에나 현수막 나부끼는 일상 투쟁의 시위장이 됐다. 갈등구도 해소 시스템이 전무한 지금 예측 가능한 것은 더 볼썽사납고 더 험한 '사수'의 장이 되리라는 전망이다. 두 자식이 떡 놓고 싸운다고 모두 빼앗는 꼴? 나라꼴이 왜 이 지경인지, 신공항 후폭풍 속의 과학벨트가 걱정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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