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해경 대전문화예술의전당 관장 |
기부든 후원이든 그 대상이 있기 마련인데 기부의 경우 앞서 말 한대로 그 대상이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이 된다. 여기서 기부자는 자신의 '돈' 혹은 '물건'이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사용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자 하지 않는다. 자선사업이나 공공사업에 사용된다는 것 하나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원은 그 대상이 뚜렷하며 구체적이다. '뒤'에서 돕는다라는 말은 '앞'에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고 이는 즉 후원의 대상이 눈앞에 정확히 보인다는 것이며 매우 구체적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후원은 자신의 돈이나 물건이 어떤 모습으로 사용되기를 원하는지 분명한 가운데 이뤄지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은 2003년 10월 1일 개관했고 이듬해인 2004년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가 발족됐다. 수준 높은 공연예술을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어 했던 사람들, 그것도 아주 간절히 원했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후원회를 발족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분명하다.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이 수준 높은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것, 언제나 행복해지고 항상 최고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그러한 공연장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러한 바람으로 이들은 후원회를 발족했고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을 뒤에서 돕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후원이란 행동은 자발적 관심과 대상에 대한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 그리고 사랑에서 기인한다. 또한 목적과 대상이 분명한 후원이란 행동은 '후원자'와 '후원을 받는 자' 사이에 건강한 긴장상태를 만들어준다. 목적이 뚜렷한 후원은 그에 걸맞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긍정적 부담감을 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말 관장으로 취임한 이후 가장 큰 비중을 두고 벌여온 사업이 유료회원과 후원회원 증대였으며 동시에 이들을 위한 서비스분야였다. 예당 지하 주차장에서 공연장으로 이어지는 지하통로 건설 예산을 확보한 것, 현관 입구의 발판과 차가운 현관 손잡이에 따뜻한 덮개를 씌운 것 등 굵직한 것에서부터 세세한 것까지 살피게 된 것의 이면에는 이 같은 예당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 작곡가와 음악가, 미술가, 건축가 등은 후원에 의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후원자에 귀속되어 그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야하는 부작용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향유하고 즐기고 감동받을 수 있는 대부분의 위대한 작품들은 이들 후원자의 희생이 아니었으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차르트가 그랬고 하이든이 그랬으며 미켈란젤로와 렘브란트, 에곤 실레가 그랬다. 과거뿐만이 아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과 김지연 등은 스트라디바리 소사이어티의 후원으로 고가의 스트라디바리를 값싸게 대여해 사용하며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었으며 링컨센터와 구겐하임 미술관등 미국의 대부분 연주홀과 미술관도 각계의 후원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에 기부와 후원은 이처럼 매우 큰 역할을 한다. 기부와 후원이라는 자발적 행동은 수많은 정책보다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제 아무리 기발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정책이라도 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게 되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격조 높은 공연기획과 탁월한 공연장 운영으로 우리나라 신(新)중심 공연장이 되는 것이 바로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의 비전이다. 이 비전을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깊이 깨닫고 이를 위해 기꺼이 후원할 수 있는 여러 후원회원들과 함께 이루어가고 싶다. 나의 공연장이 아닌 우리의 공연장이며 대전시민의 공연장이기 때문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