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랑' 시작은 산불예방 부터
▲ 하영효 산림청 차장 |
매년 이맘때쯤 산하가 울긋불긋한 꽃과 연초록 잎새를 준비하는 동안 산림공무원들은 까맣게 타들어가는 숲을 안타까워하며 긴장의 나날을 보낸다. 새해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산자락에 붙은 논밭두렁과 농산폐기물을 태우는 철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흔히들 1년 농사는 논밭두렁이나 농산폐기물을 태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농산촌의 노인들은 병해충을 방제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 혹은 자식의 일손을 덜어준다는 이유로 날씨가 좋을 날을 골라 논밭두렁에 불을 놓고 고춧대나 폐비닐을 모아 태운다. 농촌진흥청이 논밭두렁을 태우면 병해충을 방제하는 효과보다 이로운 벌레가 더 많이 죽으므로 오히려 농사에 불리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지 오래다. 그러나 한번 몸에 밴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 않듯이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논밭두렁 태우기가 좀체 근절되지 않고 있다.
산림 안에서는 물론 산림으로부터 100m 이내에서는 불을 피우거나 불을 가지고 들어가서는 안된다. 이를 어기면 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만약에 산불로 번지면 한순간에 범법자가 되고 만다. 논밭두렁을 태우다 산불로 번진 사례가 연간 130여건, 산불 4건 중에 1건 이상이 논밭두렁에서 비롯된 셈이다. 사연이 어떠하든 산불을 낸 사람은 처벌을 받는데 3년 이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산림보호법'이 정하고 있다.
논밭두렁을 태우다가 산불을 내면 처벌도 무겁지만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불을 낸 죄책감에 이를 끄다가 사망하는 경우다.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18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올해 들어서만도 경북 의성에서 김모씨(76)씨가 밭두렁을 태우다 연기에 질식해 사망한 것을 비롯해 벌써 사망사고만 세 건이다. 주로 노인들이다 보니 미처 대피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이처럼 논밭두렁 태우기는 농사에 백해무익할 뿐만 아니라 생명까지 앗아간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산불은 한 순간의 실수에서 비롯되지만 그 결과는 평생의 멍에로 남는다. 참담한 상처를 입은 숲은 그 상처를 치유하는 데 인간 삶보다 더 긴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푸른 숲을 까맣게 태워버리는 산불은 본인의 아픔에 그치지 않고 가족은 물론 사회 전체에 아픔과 고통을 안겨준다.
이미 올해 첫 모내기가 경기도 이천에서 시작됐다. 올해도 본격 농사철를 앞두고 논밭두렁 태우기가 염려된다. 이제 논밭두렁 태우기가 병해충 방제에 효과가 없으며 위험하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 근절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남 강진군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논밭두렁 소각금지 조례를 제정해 성과를 보고 있다. 산불방지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 풀을 베 퇴비 등을 자원화하고 폐비닐은 재활용하거나 공동 수집해 매각함으로써 환경보전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일거삼득이라 할 수 있다.
올해는 유엔이 지정한 '세계 산림의 해'다. 지구환경문제 해결에 산의 가치와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국제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정한 것이다. 세계 산림의 해를 맞아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에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산불로부터 산림을 지키는 일이다. 산 사랑의 시작은 산불예방에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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