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갑판에서, 전기실에서, 행정실에서, 그들은 오직 조국 영해 수호만을 생각하며 두 눈을 부릅떴다. 장렬한 최후를 눈앞에 두고서도 충절의 고장 대전·충남 남아(男兒)로서의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산화 또는 전사한 천안함 46용사 가운데 우리 고장 출신 장병은 모두 8명.
지금은 두 동강이 나 다시는 바다를 누빌 수 없는 천안함이지만 함내 곳곳에는 아직도 그들의 호국혼이 살아 숨 쉬는 듯하다.
고(故) 최한권 원사(홍성)는 천안함 전기장인 동시에 배의 든든한 맏형으로 평소 부사관 선임답게 자신의 일을 프로처럼 처리했다.
천안함 폭침 당시 극적으로 생존 장병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조명등을 보고 탈출한 것도 최 원사의 철두철미한 장비 정비 덕택이었다.
천안함 음탐장이었던 고 김경수 상사(서천)는 책임감이 남달리 강한 군인이었다. 만능 스포츠맨으로 운동경기를 통해 장병들의 단합을 책임져 왔다.
행정장 고 민평기 상사(부여)는 매사 솔선수범하는 부사관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행정업무 외에 전투배치 등 긴급 상황이 벌어지면 갑판에서 정보 영상을 촬영하는 등 모범을 보였다.
병기사였던 고 박석원 상사(천안)는 포술장비에 대한 실질적인 정비를 도맡아왔다. 포 정비, 사격훈련 등 궂은 일을 맡으면서 장병들의 모범이 됐다.
고 임재엽 중사(대전)는 천안함 내기사로 있으면서 항상 얼굴에 기름이 묻어 있을 정도로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또 후배를 아우르는 부드러운 카리스마 소유자로 함내 수병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전기사로 복무했던 고 박보람 중사(아산)는 모범적인 부사관으로 해군 장병의 표상이었다는 후문이다. 병석의 모친 수술을 위해 붓기 시작한 정기적금 만료를 앞두고 변을 당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보일러병이었던 고 이상민 병장(공주)은 해군 부사관인 외삼촌을 따라 해군에 입대했을 정도로 바다를 사랑했다. 집안에서 '늦둥이'인데다 만기 전역을 보름여 앞두고 돌아오지 못해 기다리는 이들을 애달프게 했다.
고 김선호 상병(천안)은 후임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병사로 책임감이 강했다. 육상부대 전출을 고사하고 천안함 근무를 연장했을 정도로 전우에 대한 애착이 컸다.
/강제일 기자 kangj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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