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민평기 상사의 아버지 민병성씨가 부여 고향집에서 아들의 영정사진과 대학 시절 썼던 중국어 책, 평소 좋아하던 조립식 로봇을 매만지고 있다. |
2010년 3월 26일 밤 천안함 침몰 속보가 나오자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69)씨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안절부절못하는 윤씨를 보고 남편 민병성(73)씨는 “해군 배가 한두 대도 아닌데 절대 그런 일 없을테니 걱정마라”라고 위로했다.
아들 생존을 기원하는 부모의 간절한 바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윤씨는 “TV 실종자 명단 4~5번째에 애기 이름이 나오는 데 하늘이 무너진 느낌이고 세상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민씨와 윤씨는 '우리애기'로 불렀던 민 상사를 그렇게 가슴에 묻었다.
고 민 상사는 부여출신으로 부여고를 졸업하고 건양대 중어중문학과 2학년을 마친 뒤 해군 부사관으로 자원입대했다.
부모 눈에는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는 영리한 아들이었다.
아직도 윤씨의 머릿속에는 사고 직전 아들과 나눈 전화통화 내용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윤씨는 “한 동안 배를 타고 내린 애기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와 한 번만 더 배를 타면 승진이 될 것 같다고 했다”며 “아들이 이번 배를 마지막으로 배는 안탄다고 했는데….”라며 아들을 먼저 보낸 부모의 애달픈 심정을 쏟아놓았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지 1년 가까이 흐르면서 민씨 부부는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며칠 전 부부는 또다시 서로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민씨는 “평택 2함대 사령부에 조성되는 천안함 전사자 기념관에 보관할 유품을 누군가 가지러 집에 왔다”며 “그때 애기가 입던 옷가지와 평소 좋아했던 조립식 로봇을 들려 보냈는 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민씨는 아들이 대학 때 공부했던 중국어 책을 부여잡았다.
그는 책 속의 아들 흔적을 바라보며 “애기가 밑줄 치고 토를 달고 낙서한 것을 보면 금방이라도 달려와 안길 것 같은 느낌이다”라며 막내아들을 그리워하는 애끓는 심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민씨는 단호한 어조로 군 당국에 쓴소리를 했다.
그는 “윗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장비에 뺑기칠(페인트칠)만 할 것이 아니라 구식 장비를 하루빨리 신형으로 바꿔야 제2 천안함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제일 기자 kangj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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