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순진 대전대 문예창작과 교수 |
송찬림사. 윈난성에서 가장 큰 티베트 불교 사원으로 1679년 달라이라마 5세에 의해 창건됐다고 한다. 이곳 중텐은 달라이라마 5세에게 바쳐진 도시로 어느 집에서나 독경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다. 한번에 1600명이 독경할 수 있는 대형불전이 있는 이곳은 현재도 600여명의 학승이 있다고 한다.
쿤밍에서 다리, 리장을 거쳐 오면서 갖가지 상상 끝에 도달한 중텐은 예상보다 컸다. 그리고 오래된 건물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 지은 비슷비슷한 건물이 시내 중심가를 차지하고 있어 중국 정부에서 관광을 위해 급조한 티가 물씬 풍겼다.
고성의 가운데 높은 곳에 사원이 자리 잡고 있다. 올라가 보니 혼자 돌리기엔 벅찬 대형 마니차가 있다. 몇몇이 달려들어 옴 마니 반메훔을 외우며 돌려 본다. 바람에 수많은 깃발이 펄럭인다. 이곳에서는 곳곳에 경전이 적힌 깃발이 달려있는데 자세히 보면 그 안에 말이 그려져 있다. 바람에 이 깃발이 날리면 말이 바람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 깃발을 단 사람의 소원을 알린다고 한다.
1933년 발표된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샹그릴라는 절대적인 평화와 안식의 세계를 일컫는 말로 눈 덮인 봉우리의 대협곡, 찬란한 금빛 사원, 삼림으로 둘러싸인 호수, 소와 양떼가 거니는 대초원이 있는 이상향이다. 1996년 싱가포르의 배낭족들이 중텐에 들렀다 바로 여기가 소설에 묘사된 샹그릴라라고 주장하자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인 조사를 한 끝에 1997년 중텐을 샹그릴라라고 공식 발표하였으며, 2001년에는 현 이름마저도 샹그릴라 현으로 개칭하였다.
중텐은 기대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누구나가 탄복할 만큼 아름답고 비옥한 곳이라 샹그릴라인 것은 아니다.
선조들이 그려왔던 이상향을 떠올려 본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유래해 동양인에게 널리 알려진 무릉도원, 안평대군이 꿈에 본 무릉도원을 그린 안견의 '몽유도원도', 허균이 꿈꾼 율도국, 제주도민들이 그리던 이어도, 청학동까지. 이상향의 공통점은 왕래가 끊어진 곳이라는 점이다. 이 세상, 불안과 불행과 불화가 가득찬 이곳과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다면 이상향이 오염될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이상향은 어디에도 없는 곳(no where) 이다.
중텐도 중국 정부의 뻔한 속셈이 간섭하기 전에는 샹그릴라였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내가 찾아간 샹그릴라는 자본의 냄새를 맡은 중국 정부에서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장족의 공동체를 파괴하며 급조한 세트장일 뿐이었다. 카페 샹그릴라, 술집 샹그릴라, 호텔 샹그릴라… 상품명으로 소비되는 샹그릴라는 이미 샹그릴라일 수 없다.
한번쯤 가볼 만한 곳이라는 추천에 기대를 안고 전 세계를 떠도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들의 방식대로, 최소한의 것으로 자족하며 평화롭게 살던 지구상의 아름다운 공동체는 다 사라져 버린다. 라다크 공동체도 중텐의 장족 공동체도 리장의 나시족 목씨 공동체도.
샹그릴라가 어떤 곳인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찾아간 나 역시 오랜 세월 지켜져 온 장족 공동체를 파괴하는데 일조한 것은 아닌지 그들에게 미안했다. 샹그릴라는 장족의 말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다. 그러니 마음속에 해와 달을 간직하고 사는 곳이 샹그릴라인 셈이다.
돈과 권력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써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이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공존하는 곳이 샹그릴라이다. 그곳에는 지구에서 살되 마음속에 해와 달을 품은 사람이 산다. 다른 사람이 가꾸어놓은 샹그릴라를 기웃대느라 한평생을 보내는 대신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샹그릴라로 가꾸는 데 시간을 보내야겠다.
여행을 통해 깨닫는 가장 큰 지혜가 내가 발 딛고 선 지금 이곳의 삶이 지닌 가치라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이상향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now her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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