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신]매화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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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신]매화를 그리며

[문화초대석]박석신 목원대 미술교육과 교수

  • 승인 2011-03-20 13:54
  • 신문게재 2011-03-21 20면
  • 박석신 목원대 미술교육과 교수박석신 목원대 미술교육과 교수
▲ 박석신 목원대 미술교육과 교수
▲ 박석신 목원대 미술교육과 교수
유난히 더디게 오는 봄 길. 꽃샘추위 속으로 남도 '화첩기행'을 떠났다. 전남 장흥에 '청매원'이라는 매실농장을 운영하시는 분을 만날 겸 매화구경과 스케치를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청매원에 도착하니 또다시 찾아온 꽃샘추위로 매화 밭은 무릉원을 꿈꾸며 찾아온 일행들에게 황량함을 안겨주었다.

매불매향(賣不梅香)이라 했던가! 아무리 추워도 매화는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매화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뜻이라고는 하지만 피어도 한참 전에 피었을 것을 잔뜩 기대하고 찾아온 나그네 마음에 화사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매화에 실망하고 있을 때, 청매원 주인이 오시더니 매화의 봉오리들을 유심히 보라 하신다.

매화가 무언가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이 소리가 무슨 소리인가 싶어 매화나무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매화나무 가지 아래에 몇몇 송이는 이미 피어 있고, 또 몇몇은 이제 막 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잘 보세요, 이 녀석은 어제저녁 추위 속에서 피어난 녀석이고, 요 녀석은 새벽 안개 속에서 피어난 녀석이고, 또 요건 해 뜰 때, 이건 아까 우리가 저 아래에서 차 마시고 있을 때, 저건 우리가 이제 막 내려가면 피어날 녀석이지요. 그리고 나머지 녀석들은 이번 꽃샘추위가 가면 내일 오후쯤 팝콘 튀기듯 튀어나오겠지요.”

어쩌면 농부의 표현력이 저리 유창하고 섬세한가 싶어 여쭈었더니 30년 가까이 농장에서 그 녀석들과 함께 세월을 보낸 터라 이제는 그 모양만 보아도 꽃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신다.

화가의 관찰력과 농부의 관찰력이 별반 다를 게 없다고 했더니 그렇잖아도 간간이 그림을 그리고 있고 매화도 종종 치신다고 한다. 그런 농부의 그림이 궁금해 보여달고 청했더니 수줍게 그림들을 펼쳐보여 주신다.

붉은 홍매를 그렸는데 참으로 순수하고 질박하다. 솜씨좋게 그려진 그림은 아니지만 늘 꽃을 관찰하고 함께 살아온 정감과 사실감이 느껴진다.

농부의 그림은 화실안에서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기법을 배워서 그려진 관념화된 그림과는 전혀 달랐다.

매화나무의 구부러진 방향은 농부가 해마다 가지치기를 해주어 햇살받기 좋은 쪽을 향해 방향을 잡고 있었으며 오래묵은 굵은 가지에서는 새순이 가시처럼 돋아나고 있었고 꽃은 피어난 시기별로 그 모양과 방향을 달리하고 그려져 있었다. 어쩌면 화가의 그림보다도 더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그려져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림을 배우면서 관념적 시각과 관념적 기법으로 대상을 만나게 된다. 대표적으로 사군자를 그릴 때 선비의 높은 격조를 강조하느라고 실제로 현장에서 관찰하기보다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화법(畵法)에 정리돼 있는 그림 그리는 방법에 얽매이게 된다.

물론 문헌과 자료로 내려오는 화법서들을 보면 실제로 보고있는 것처럼 자세하게 묘사해 놓고 있어 수려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따라 그릴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사물을 보고 느낀 감정이나 관찰을 통해 감지되는 나만의 시각과 느낌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즉 몰개성화인 것이다.

최근 들어 사회교육이 활성화되면서 취미로 예술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봄·가을 전시장에는 취미로 그림을 그려서 전시하는 모임들도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려는 시도보다는 관념화된 유형을 답습해 정형화된 그림들을 전시하는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묘사하고 있는 세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

햇살이 좋은 날은 좋아서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와서 더 즐거운 그림을 내 마음속에 창조자로 그리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사회 교육속에서 진정한 예술가가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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