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기정 금강문화유산연구원장 |
우리나라의 문화재보호법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문화재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령은 일제가 1933년에 제정한 '조선 사적 보물 명승 천연기념물보호령'이 처음이었다. 이 보호령은 일제가 우리 조선의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빌미로 제정한 것이지만, 보호와 관리를 빙자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이 극심하게 수탈되기도 하였다. 일제에 의해 제정된 이 보호령은 해방 이후에도 한참 동안 그대로 유지되다가 1962년에야 비로소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폐기되었다.
그런데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어가던 1961년 12월 동아일보 신문사설을 보면 해방 이후에도 문화재의 보호 및 관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이승만 정권의 부패에 따라 문화재 관계 관리들의 부정과 협잡이 극심하였으며,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은 문화재횡령착복피의사건으로 혁명재판소의 심리를 받고 있다는 내용들이 실려 있다. 이러한 당시의 사회적 혼란과 문화재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은 이후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근간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왔으며, 개발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들을 정도로 난개발이 극심하던 시절에도 부족하지만 문화재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수많은 역사유적과 유물들이 이를 통해 보존되었다.
이런 문화재보호법이 2010년에 개정되어 '문화재보호법'과 '문화재수리 등에 관한 법률',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등 세 법률로 나누어졌다. 이 중에서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은 땅속이나 수중(水中)에 매장(埋藏)되어 있는 미발견된 문화재들을 조사하거나 관리하는데 중점을 둔 법률로서 그 하위 법령으로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있고, 문화재청장이 제정하여 고시하는 '발굴조사의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 등이 이 법에 따라 올해 2월 5일 이후에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기존 법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법이라면 당연히 전 보다 더 나아져야 할 것인데, 이 법과 하위 법령들이 시행되자마자 전국의 고고학과 교수 69명 중에서 8명을 제외한 61명이 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간담회를 개최하면서 전면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가장 큰 핵심 쟁점은 문화재청장이 고시한 하위 규정의 발굴조사 실시기준이다. 이 기준에 의하면 앞으로는 조선시대 후기 이후의 경작(耕作)유구나 집터, 회곽묘, 삼가마 등은 사실상 조사가 어렵게 되었고, 구석기시대의 유물들이 묻혀 있는 고토양층 등은 일부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조사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근대문화유산에 해당되는 일제강점기의 매장문화재 자료들은 아예 발굴 금지 대상에 해당된다. 이외에도 각종 문화재들의 발굴여부와 조사방법이 OX표 식으로 작성되어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해외 선진국의 사례와 한국고고학회의 연구용역 결과를 참고하여 만들었고 보완 규정이 있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해외 선진국에서 이런 법을 시행하고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미국의 경우 지금 시점으로부터 100년 이전, 영국의 경우 1차대전 이전 시기의 유적이면 발굴조사의 대상이 된다. 더군다나 우리보다 못한 나라라 할지라도 국가가 이것은 발굴해도 되고 이건 안 되는 문화재 살생부를 만들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고고학회의 연구용역이란 것도 학회에서 정식으로 의뢰받은 것이 아니면 내부의 일부 인사만 관여하였기에 학회 차원에서 이에 대한 반박자료를 게재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그 나라의 법은 그 나라의 현재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4대강사업이 추진되던 2008년을 기점으로 문화재청의 정책기조가 문화재 보존보다는 개발 민원 해소에 더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선회하였고, 새로이 제정된 매장문화재 관련 법령으로 인해 오히려 문화재 훼손이 우려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은 지금의 우리가 어떤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반면거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개탄스러운 법령이 하루 빨리 고쳐지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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