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규]상처주는 권위주의, 치유하는 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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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규]상처주는 권위주의, 치유하는 교권

[중도춘추]정일규 한남대 교수

  • 승인 2011-03-17 15:18
  • 신문게재 2011-03-18 20면
  • 정일규 한남대 교수정일규 한남대 교수
▲ 정일규 한남대 교수
▲ 정일규 한남대 교수
중학교 시절 한 사건이 비교적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종례시간에 몹시 화가 나신 선생님은 한 손에 회초리로 교단을 내리치고, 한 손으로는 편지를 흔들고 계셨다. 내용은 모르지만 누군가로부터 교장선생님께 보내졌던 편지였다. 선생님은 모두 눈을 감게 하고 편지를 보낸 사람은 손을 들게 하였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노트를 펴게 하고 한사람씩 편지와 노트의 필적을 대조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노트검사가 거의 끝나가고 내 자리에 가까이 오셨을 때 유독 짝꿍의 얼굴이 빨간 사과처럼 물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긴장감에 못 이겨 빨개진 그 얼굴을 보고 그를 범인(?)으로 확신하시는 눈치였다. 선생님이 노트와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시며 추궁하자 짝꿍은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결국 그가 편지의 장본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 일은 바로 옆에 앉아 있었던 내게도 오랫동안 아련한 아픔으로 남아있었다.

그 사건이 특별히 폭력적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권위주의라는 말을 접할 때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곤 하였다. 사실 학창시절 선생님의 회초리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이미지로 남아 있다. 경고나 분노를 나타내기도, 사랑과 관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는 선생님의 회초리에 담긴 함의가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말해준다.

얼마 전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전면적 체벌금지가 시행되자 여러 단체에서 이의 성급한 시행을 비판하면서 교권침해와 교실붕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또 대전시를 비롯한 여러 시도에서도 이의 시행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그 중에는 체벌금지와 교권침해를 인과적 관계로 단정 짓고 체벌의 필요성을 강변하는 소리도 들린다. 체벌로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학교교육의 현장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논점을 크게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왜냐면 체벌에 의해 지킬 수 있는 것이 결코 '교권'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교사의 진정한 사랑과 눈물을 담고 있는 회초리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사의 사랑을 회초리와 같은 체벌에 담아낼 수 있다면, 다른 방법으로는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체벌금지가 교사의 열의를 꺾고 무관심을 불러올 수 있다고도 한다. 물론 무관심은 체벌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체벌금지가 된다고 해서 무관심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교권'이 아닌 것이다.

교권은 체벌이 아니라 더 큰 노력에 의해 지켜야할 가치다. 그것은 '교사의 자리'이자 학부모, 학생 그리고 사회가 동의해준 권위이다. 이 권위를 체벌에 의해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권위주의'가 아닐까? 교사의 자리를 찾아주기 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역량이 모아져야 한다. 교사 개인이 다루기 어려운, 일탈 학생에 의해 조장되는 폭력적 상황이나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에 대해서는 그 사안에 따라 강력한 제도적, 법적인 대처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인권이란 교육을 통해서 추구하려는 바로 그것이며 교육의 본질을 이룬다. 질서의 아름다움과 규칙의 편리함은 권위주의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기꺼이 감수하는 자발적 동의를 통해 배울 수 있다. 교실붕괴라는 표현에는 현실적 부작용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편집증적인 거부감이 배어있음이 느껴진다.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기 학생들에게 '교권'으로 잘못 이해되고 포장된 권위주의는 일생에 걸쳐 상처로 남게 되며, 그들 또한 권위주의 문화와 사고 속에서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권위주의라는 넓은 길을 피하여 나있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좁은 샛길이다. 권위주의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만 교권은 그것을 어루만지고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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