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는 피임약, 자동차와 함께 자유연애, 성혁명을 불러왔다. '지퍼게이트'라 하듯이 지퍼는 성(性)스러운 상징물이기도 하다. 일본 대지진에 묻히고 말았지만 오늘로 나흘째 현지 합동조사 중인 '상하이 스캔들'을 봐도 그렇다. 뉴욕타임스는 세계사를 바꾼 베스트 패션으로 지퍼를 선정하면서, 옷 입는 문화와 벗는 문화 모두에 혁신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규정했다.
심지어 어느 디자이너는 “성교를 위해 옷을 입는다”고 단언한다. 더 극단론도 있다. 옷에 달린 지퍼를 갖고 놀면 “자위행위의 형태”란다. 대륙이동설도 아니고 성감대 이동설도 있다. 가슴, 다리, 엉덩이 등으로 옷의 에로틱 부위가 시대에 따라 이동한다는 거다. 이를 지퍼가 통 크게 거들었다. 다닥다닥 달린 단추와 반쯤 열려진 지퍼의 진도가 같을 수 없다. 나비리본이 선물을 끄르는 환상에 젖게 하고 후크, 매듭도 나름 상상의 권능을 건드리지만 뭔가 약하다.
지퍼를 사물화 관점에서 다룬 소설도 있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에서 그녀의 은밀한 곳에 달린 견고한, 질 좋은 지퍼, 그걸 여닫는 행위는 음란함과 관계되는 은유다. 그보다는 사물 대 사물로 그린 인간관계 설정에 눈여겨봐야 한다. 이것도 그렇고, 영화 '외출'에서 찌익 하고 청바지 지퍼 내리는 효과음은 “지퍼보다 섹시한 것은 없다”는 앨리슨 루리의 말과 딱 겹쳐진다.
열고 닫는 건 지퍼의 본모습이다. 지퍼라는 이름도 '그것을 연다', '그것을 닫는다'에서 나왔으나 임의 개폐는 삼가야 한다. 총체적으로 나라망신을 시킨 상하이 총영사관 건에서 봐도 지퍼가 갖는 상하운동의 전형을 비껴갔다. 본질이 스파이건 스캔들이건 비루한 진실과 황홀한 거짓말 사이에서 헤매지 않아야 한다. 사랑할 때, 위험한 사랑일수록 활성화되는 신경회로는 약물 중독에 관여하는 신경회로 수준으로 강력하고, 지퍼 단속은 중요하다.
성경 아가서에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시샘은 저승처럼 극성스러운 것'이라 했고, 법구경 진구품에는 '불[火]로서는 사랑의 욕망보다 더 뜨거운 것이 없다' 했다. 무서운 말이다. 외국 여행길의 어떤 '마누라'가 남편에게 남겼다는 메모가 차라리 현실적이다. “가스 조심하고 불조심하고 지퍼 조심하고 기다려라.” 지퍼는 착각을 유발한다.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공학기술, 그 앞에서 요구되는 지퍼 조절 능력이다./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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