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 연정국악문화회관장 |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과 기업만을 우대하는 시대상황을 두고 그는 “인간의 생명이나 자연미, 역사까지도 파괴하고 결국은 인간의 품위와 생의 가치마저 빼앗기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러스킨이 주창한 문화경제학은 물질만능에 빠진 영국사회의 상식과 가치관을 완전히 뒤엎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의 저서를 통해 러스킨은 인간과 자연환경이 가지고 있는 모든 고유가치들은 인간의 생명과 생활에 기여하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술성과 문화성이 없는 재화들은 무가치한 것이며 그것을 생산하기 위한 자원의 배분 또한 쓸데없는 사회적 낭비라고 역설했다.
인간의 개성을 가장 존중하는 인간중심의 경제학을 태동시킨 러스킨의 '문화경제학'은 경제적 동기에 의한 비용과 금전증가만을 추구하는 경제보다 인간의 전면적인 발달을 위한 문화예술과 융합된 경제에 더 큰 고유 가치를 부여했다. 복지정책에만 올인하는 우리정부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이렇듯, 고유 가치를 보는 눈이 높은 사회를 가장 이상적인 사회로 규정한 러스킨의 문화경제학을 들추지 않더라도, 경제는 도덕적 완성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인간중심의 유학사상을 우리는 너무 까마득히 잊었다. 오로지 인간을 편하게 하는 기술(IT:information technology)만 맹종하면서 말이다.
문화의 21세기는 인간을 즐겁게 하는 기술(CT:culture technology)을 사회적 가치로 여기는 사회다. 경제적 손익만 따지느라 문화예술을 방치하거나 보전하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의 삶의 질이 그만큼 떨어질 것이 자명한 일이다. 일제 36년 문화말살정책이 그랬고 한강의 기적을 일군 개발독재 30년이 그랬다. 영원한 파라다이스라는 확신으로 60억 인류가 뒤 좇던 20세기 물질문명이 쇠퇴하고 동양의 정신문명이 21세기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인류학자들의 예측이 하나 둘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 그렇다. “정신문명이 물질문명에 우선한다”는 페러다임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 역사의 진정성을 뼈저리게 통감하는 중이다.
“30년 전 성취동기가 30년 후 그 사회의 성공여부를 결정한다”는 사회학적 정의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입증한 대한민국 실리콘밸리 대덕연구단지가 사회복지에 눈먼 정부 시책에 밀려 활력을 잃은 지가 이미 오랜데, 설상가상으로 패거리 정치가 또 한 차례 짓밟아 뭉개고 있다.
국제과학 비즈니스 벨트는 대덕 연구단지를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정부차원의 로드매이지! 정당의 선거공약으로 좌지우지 할 일은 아니었다. 한 표라도 더 얻을 요량으로 지껄여본 선거공약이었다면 애시당초 그냥 놔두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러면 일이 꼬일 일도, 골치 아플 일도 없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황금만능의 정점에서 부러울 게 하나 없는 60억 인류가 21세기를 굳이 문화의 세기로 설정한 까닭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곰곰이 되짚으면 된다. 문화의 21세기 주역으로 통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누가 먼저, 인간을 편하게 하는 기술(IT)과 인간을 즐겁게 하는 기술(CT)을 융합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명운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38년 동안 대한민국의 첨단과학을 주도해온 대덕연구단지 일원을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이 어우러진 세계제일의 CT테마파크로 추천한다. 과학도시라는 찬사를 받으면서도 우리는 늘 그들을 외면했던 게 사실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인류의 영속을 위해 25시를 사는 대덕연구단지 2만 5000여 석학들과 머리만 맞대면 될 일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문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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