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정 유성구청장 |
당황스럽고 낯선 상황들이 벌어졌다. 주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진정한 참여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의미에서 미국식 타운홀 미팅(Town hall meeting)과 비슷한 주민과의 만남을 3주간에 걸쳐 진행하였을 때 나타났던 모습들이다. 연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동 순방을 생생한 민의파악을 위한 주민 간담회로 대체하였다. 현재의 대의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주민의 생각과 요구를 잘 담아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리더십의 과제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말로만의 소통과 현장행정이 아닌 수요자에 귀 기울이는 경청행정 차원에서 처음 시행하는 형식이다 보니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된 적도 있었지만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몇몇 사안들은 의미 있는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또한, 의사결정까지의 시간은 더 걸릴지 몰라도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불만 요소를 최소화하고 보다 실행가능성을 높이는 효율적인 의사결정모델로서의 가능성도 확인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지방자치를 시작한 지 20년을 맞는 의미 있는 해다. 중앙집권적 전통이 강한 풍토에서 지역의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는 풀뿌리민주주의가 자리 잡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주민에 의한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도 빠른 기간에 상당부분 발전한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대표자에게 주민의 권력을 위임하는 대의 민주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시행되고 있다.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사회가 복잡해져 온 국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시스템과 제도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때 대의민주주의는 민의를 얼마나 잘 반영하느냐에 따라 성공여부가 판가름 난다. 문제는 대표자를 주민의 손으로 뽑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민의가 전달되지 않거나 왜곡되는 구조가 되어 직접 자신과 관련된 문제가 논의되는 곳에 참여하고자 하는 주민의 욕구와 열망이 분출되었다는 점이다. 요즘 정치권에서 소통과 참여가 화두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008년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 현 오바마대통령은 수천 번의 타운홀 미팅을 통하여 주민들과 대화하고 의견을 경청하면서 설득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고 지금도 사이버공간과 오프라인 공간을 넘나들며 국민과의 소통을 계속하고 있다. 주민의 대표자인 의원과 주지사, 시장 등에게 의견을 묻기보다는 주민에게 직접 의견을 묻고 정책결정에 참여토록 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국민의 참여를 통하여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한 참여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정치와 행정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들러리 주민참여가 아닌 실제로 주민들에게 자신과 관련된 정책을 결정하는 권력을 행사하는 주민참여가 될 때 객체로서의 주민이 아니라 풀뿌리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참다운 지방자치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튼튼한 토대로 발전할 수 있다.
이제 지방자치에서 장밋빛 비전을 제시하면서 주민을 이끌어가기 보다는 서로 다른 주민의 의견을 조율해 나가면서 갈등을 최소화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조력자(Facilitator)로서의 역할이 선출직 공무원에게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주민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고 주민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선출직공무원이 담당해야 할 몫이요 시대적 역할이다. 이점이 각본 없는 주민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소중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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