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같은 인간과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무지의 문제는 범인들의 고민만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성현이나 철학자들이 평생을 두고 풀고자 했던 화두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란 자신을 아는 것이라는 탈레스의 말처럼 인간을 알고 더나아가 자신을 아는 일이란 예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여하튼 이러한 자기무지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여러 우수한 능력에 견주어 보면 아이러니하면서도 이율배반적인 결점이다. 문제는 이 결점이 그저 결점으로 적응화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인간의 삶을 불행하게 하고 고통받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사람이 사람을 알 수 있으며, 자신이 자기를 제대로 알 수 있겠냐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응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찾고자 한다면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성현의 말씀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며, 요즘 성행하는 자기찾기 프로그램 등도 여기에 한몫을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법들은 너무나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답만을 제시해 줌으로써 속을 시원하게 해 주는 답은 되지 못한다. 모든 물음의 답이 그렇듯이 답은 먼 곳이나 높은 데에 있지 않다. 사람의 문제라면 사람에게 답이 있을 것이고, 자신의 문제라면 당연히 그 답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주역의 계사전에 명언 한마디가 나온다. 근취저신 원취저물(近取諸身 遠取諸物)하라. 즉 '가까이는 자기 몸에서 취하고, 멀리서는 모든 사물에서 취하라'는 것이다.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이서 찾으라는라는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을 자연으로 보지 않는데 있다. 인간은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자연체다. 머리로는 다들 아는 얘기다. 모든 자연체의 숙명은 시간과 함께 한다. 고로 인간도 시간의 존재인 것이다. 우리말 중에 인간이 시간의 존재임을 인정하는 말이 있다. '닮다'라는 말과 '철'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어휘는 시간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닮다라는 것은 '달을 맞다'라는 말의 준말이다. (여기서의 달은 위성(moon)을 뜻하는 게 아니라 시간상의 월(月)을 뜻한다) 즉 달의 기상을 맞아 들였다는 뜻이다. 인간의 육체는 부모를 닮지만 정신이나 행동양식은 태어난 달이라는 시간을 닮는다는 뜻이다. 즉 출생월의 시간적 속성을 물려 받는다는 말이다. 그 예로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자식이라도 성격이나 행동유형이 각기 다른 연유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임상을 해 보면 이 이치는 분명함을 알 수 있다.
철이라는 말은 계절을 뜻하는 우리말로서 이 말도 시간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철이 들다 철이 나다'라는 어휘의 용례에서 보여 주듯이 사람에게 시간이 들고 나감이 육체적인 변화만을 초래하는 것이 정신적으로도 변화작용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말이다.
이처럼 사람은 육체는 사람을 닮지만, 정신이나 행동양식은 시간을 닮고, 시간과 함께 존재한다. 고로 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자신이 태어난 시간을 이해해야 한다. 공연히 생일날을 챙기는 것이 아니다. 역학이 시간학이라면 사주학은 '사람이 시간이다'라는 전제로 사람과 시간과의 상관관계를 가장 밀접하고 심도있게 접목시킨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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