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찬 고려대 세종캠퍼스 경영학부 교수 |
한국보다 뒤떨어진 나라에 가서 살아보면 사람들의 의식, 생활환경, 법과 제도 등 여러 면에서 한국의 장점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져 보이고, 한국보다 발전한 선진국에서 살아보면 한국의 단점이 드러나 비교가 된다.
20년 전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횡단보도에서 사람을 무시하고 달리는 차가 무서워 한참 동안 길을 건너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우리나라 자동차 운전 문화의 후진성을 불평하면서 한국의 생활의식과 제도 등 여러 측면에서 '한국적인 것'의 비효율성과 불합리성을 미국의 그것과 비교하게 됐다.
그때 느꼈던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점들 가운데 몇 가지는 1990년대 초반 중도일보의 '중도춘추'에 기고하면서 정리할 수 있었던 반면에, 대부분은 빠르게 한국의 제도와 관습에 급격히 동화되면서 '한국적인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 후 20년이 흘러 선진국인 미국에서 한국을 바라보면서 한국이 여러 면에서 대단한 발전을 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한국의 기술과 기업이 대단한 발전을 이룩했구나 하고 실감하게 된다. 20년 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이나 주재원은 일본의 '소니' TV나 미국의 '월풀' 냉장고를 귀국 필수품으로 구입했다.
며칠 전 TV를 사기위해 전자제품 상점에 갔더니 삼성전자의 TV가 바로 옆에 진열된 동일 규격과 사양의 일본의 TV보다 가격이 10% 정도 고가인데도 불구하고 가장 잘 팔린다고 추천해서 뿌듯한 마음으로 구입했다.많은 한국제품이 세계 최고인 일본, 미국 제품과 동일수준 내지는 우위에서 경쟁하면서 판매되고 있어서 한국의 발전을 기술과 제품 나아가 기업 측면에서 실감하고 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데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점이 신분증인 운전면허증을 만드는 것이다. 20년 전 사용하던 캘리포니아 운전면허가 만료되었기 때문에 운전면허를 다시 따야 할 것이 걱정됐다. 그런데 이 점에서 미국 법과 제도의 합리성이 구세주가 됐다. 그동안 운전은 했을 테니 실기는 안 보아도 되고, 운전법규나 규칙 등은 바뀐 것이 있으니 간단히 필기시험만 보고 운전면허를 갱신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미국보다 행정시스템 면에서도 발전했다는 것을 느낀 것은 그다음이었다. 모든 것을 마치고 운전면허증을 받기까지 약 두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정보화시스템의 발전으로 전산화가 잘 돼 있어서 행정업무 처리가 신속하다는 점이 강점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20년 만에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면서 한국이 기술, 기업, 그리고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한 것을 실감하고 있지만, 명실상부하게 남들이 인정하는 선진국, 선진국민이 되려면 우리가 시간과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할 분야가 우리의 의식과 문화라는 것을 느끼는 계기가 있었다.
엊그제,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학교에서 걱정하면서 돌아왔다. 이유는 방과후 도서관에서 숙제를 하는데 미국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숙제 내용을 잘 몰라서 옆에 앉은 친구에게 물었더니 친구가 답을 써주었는데, 지나가는 선생님이 그것을 보고, 부정행위라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숙제도 자신이 해야지 답을 친구가 해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으로 답을 하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신용을 잃으면 평생 사회생활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대통령이 되려고, 표를 얻기 위해 세종시를 명품도시로 만들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충청권에 건설하겠다고 약속하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없던 일로 하자는 한국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기술과 경제적 발전만으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G20 선진국 지도자들을 불러다가 동급으로 해달라고 하더라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한 말과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큰 일 난다고 대통령, 국회의원 그리고 모든 국민이 느낄 때,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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