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주환 대전시사회복지관협회장 |
복지를 돈의 논리에 복속시키려는 시도는 복지를 임의적인 것으로 전락시키려는 의도가 숨어있거나 사회복지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고 있지 못해서다.
일군의 학자들도 사회복지를 경제논리에 종속시키려고 한다. 그들은 각종의 경제이론을 동원하여 사회복지의 확대가 결국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복지병을 만연시킬 것이라고 진단한다. 끝내는 사회복지가 국가전체의 존망을 위협하는 요인으로까지 나가게 될 것이라면서 이런 저런 사례들을 열거한다.
중앙일간지의 지면을 큼지막하게 차지하고, 정기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는 한 논객은 '세대 간 정의'라는 개념을 들고 나와서 지금 우리가 너무 많이 누리면 우리 자식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가슴 뭉클한 글을 남겼다. 그는 당장의 혜택보다는 후손에게 물려줄 것을 키워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이상의 복지논의는 포퓰리즘이기 때문에 유보하는 것이 마땅하고, 복지비용 역시 국가의 재정을 파탄시키는 주범이므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들의 숨 넘어가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사회복지에 소요되는 비용이 산술적으로만 보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사회복지에 소요되는 비용은 사회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곤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끈을 붙잡게 하는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비용이다.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들 중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에 둔 복지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국가적 전통과 국민의 의식이 우리와는 현격하게 다른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는 복지에 관한 경험이 일천하다고 볼 수 있고, 그 나라들은 근대적 국가의 형성기부터 국민에 대한 일반적인 복지를 정부의 존재이유로 삼았다.
또한 우리나라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정량적인 재정지원에 서비스의 비중을 두고 있지만, 그 나라들은 삶의 품격을 높이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전문적인 맞춤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평면적인 비교를 할 수는 없겠지만 국가적인 복지정책이나 제도 또는 전달체계 등의 진정성을 중심으로 판단해 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올 뿐이다.
현재는 미래를 가늠하는 지표다. 지금 우리가 가난과 빈곤의 문제를 외면하고 언제 또다시 이 문제를 가슴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알거니와 나중에 돈 벌어서 좋은 일 하겠다는 사람치고 그 약속을 지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가도 이와 같아서 국가재정을 더욱 튼튼하게 한 후에 보장성을 강화하는 사회서비스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예 사회복지서비스를 하지 말자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예산의 범위 안에서'와 '순차적으로'라는 벽에 부딪혀서 복지가 이 모양이 됐는데도 50년 전의 논리를 붙잡고 있는 모양은 민망하다.
복지를 단순히 돈이나 경제의 논리로 접근해서는 답이 없다. 복지는 '가치의 문제'다. 복지의 대상은 이론이나 기계가 아니고 사람이다. 복지는 자원의 문제가 아니고 사람의 생존과 존엄의 문제다. 따라서 재정적 부담이 다소 크더라도 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급식이나 복지의 문제를 가치의 문제로 접근하는 염홍철 시장은 근사하다. 문제는 실천인데, 앞에 열거한 논리들을 포함해서 다양한 장애물들이 발목을 잡겠지만 흔들리지 말고 추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가치 있는 일은 '지금'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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