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섭 농산물품질관리원 충남지원장 |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자 그의 기를 꺾기 위해 초나라 영왕이 제나라의 도둑을 잡아놓고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하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다”라고 비아냥거렸다.
이에 안영은 “귤나무는 회수(淮水) 남쪽에서 자라면 귤이 열리지만 회수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열린다고 합니다. 저 사람도 초나라에 살았기 때문에 도둑이 됐을 것입니다”라고 응수했다.
귤나무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변하듯 사람도 환경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될 수 있다는 속뜻을 품고 있는 이 이야기를 국가의 농식품 관리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직업(병)적으로 해석을 하자면 농식품 원산지의 의미와 그 표시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 주는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농산물의 원산지란 농산물이 생산 또는 채취된 국가 또는 지역을 말한다. 농산물은 같은 작물, 품종이라도 기후, 토질, 재배방법, 시기 등에 따라 그 품질이 달라지고, 그 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한 가공식품 역시 원료의 산지, 가공방법 등에 따라 품질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농산물의 국제적 이동이 활발한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소비자가 농식품을 선택할 때 원산지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기 때문에 미국, EU,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가 원산지표시제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원산지표시제가 도입된 지 20년 가까이 되었으며, 이제는 법과 제도를 뛰어넘어 하나의 사회적 약속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3월 3일은 이른바 삼겹살 데이로 국내 양돈 농가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주창한 날이다. 소주 한잔에 곁들인 노릇노릇한 삼겹살의 치명적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필자로서는 올해 삼겹살 데이는 우울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알다시피 지난 겨울부터 전국을 휩쓸기 시작한 구제역으로 인해 무려 300만 마리가 넘는 돼지가 땅속에 묻혔다. 이미 양돈 산업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그러한 여파가 고스란히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을 위협하고 있다. 그동안 서민음식의 대명사로 인식되던 삼겹살 가격이 오르면서 서민들이 삼겹살을 사먹기 위해 마음 놓고 주머니를 열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양의 돼지고기가 수입될 전망이며 특히 삼겹살을 유별나게 선호하는 우리 국민의 식습관 때문에 수입 삼겹살이 식탁에 더욱 빈번하게 오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문제는 소비자가 이것을 구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전문가가 아닌 이상 수입 삼겹살과 국내산 삼겹살을 구분하기는 매우 어렵다. 삼겹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농산물이 그렇기 때문에 시민의 입장에서는 정체불명의 먹을거리를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찜찜하고 불안한 것이다.
오늘날 농식품을 포함한 먹을거리의 안전문제에 대해서 독일의 저명한 학자인 칼 하인츠 슈타인뮐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유사 이래 식품이 오늘날처럼 안전했던 적은 없다. 또한, 식품에 대해 소비자가 지금보다 더 불안했던 적도 없다. 그 이유는 불신이다.”
그의 말대로 먹을거리에 대한 사회적 우려와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그에 대한 제도적 관리기능은 나날이 강화되고 있으며 체계화 되고 있다. 글의 모두에서 언급한 고사처럼 귤은 귤대로 탱자는 탱자대로 있는 그대로 대접을 받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공무원이 이러한 상식을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때 국민의 신뢰가 회복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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