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급변하면서 많은 여성들은 더이상 집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자아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성차별적 노동시장의 유리천장을 감내하면서 돌봄노동과 임금노동이라는 이중고를 온 몸으로 겪어내야만 한다.
고용없는 성장으로 실업이 증가하고, 경제위기가 그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정부가 외치는 '일자리 나누기'조차 여성은 예외이고, 그저 해고의 우선순위가 되고 있다. 여성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는 언론보도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여성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비정규직과 시간제 근로로 전환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안타깝게도 20대의 80%가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한국 현실에서 이들을 기다리는 일자리는 저임금의 비정규직 일자리일 확률이 높다. 여성노동자 3명중 2명이 비정규직인 시대, 많은 여성들은 모성보호, 육아휴직으로부터 원천적인 배제를 당하면서 채용상의 불이익이나 노동시장에서 겪는 각종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형편이다.
대학졸업을 앞둔 청년여성들은 토익점수, 자격증, 인턴경력, 봉사활동, 어학연수 등 스펙5종을 쌓느라 여념이 없고 최근엔 성형까지 추가되어 스펙6종을 쌓아야 취업이 가능하다는 자조섞인 푸념도 들려온다. 요즘 20대에서 급속히 파급되고 있는 '잉여인간'이란 말은 88만원세대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짓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괜찮고 좋은 일자리로의 취업을 위해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하지만 단번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노동기대 수준을 낮추고, 스펙쌓기를 계속하면서 구직과 이직을 반복하며 발버둥을 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들을 기다리는 건 저임금의 불안정한 고용상태에서 단절적이고 분절적인 노동을 장시간 지속해야 하는 상황들이다.
'비정규직의 여성화' 또는 '여성의 비정규직화' 현상이 보편화 되면서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의 70% 이상은 비정규직이고, 노동복지와 모성보호는 꿈도 꿀 수 조차 없다. 최소한의 노동복지도 보장되지 않는 대다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빈곤은 20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평생 지속될 여성노동의 문제다. 아르바이트와 일용직,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문제는 돌봄노동과 임금노동의 이중부담, 노동시장의 성차별의 문제를 야기하며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삶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현재의 사회양극화 현상은 빈곤층의 절대다수가 여성이 되어가는 '빈곤의 여성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세계자본의 시장지배력이 커지면서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고, 그 가운데 여성들은 성차별적인 의식과 제도의 틀 안에서 무게가 가중되어 양극화의 맨 밑바닥에서 고통당하고 있다.
이혼·사별·배우자 가출 등의 이유로 전체가구의 19.5%까지 여성가구주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자녀양육 및 가사노동의 부담, 사회적 편견이라는 온갖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여성가구주 3명중 1명은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빈곤층의 절대다수가 여성으로 채워지는 '빈곤의 여성화'라는 아프고 암울한 현실을 뼈아프게 인식해야 한다.
남성중심적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저임금이 주를 이루는 여성의 일자리를 감안할 때 여성고용정책의 목표는 '국가경쟁력과 경제성장을 위한 여성인력 활용'도 중요하지만, 여성의 경제적 기반 확립을 위한 노동권 보장도 시급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낮은 경제적 지위를 차지하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감안하여 여성의 생애주기에 따른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노동정책의 수립이 절실하다.
저소득 여성들의 실질적인 소득확대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이상의 임금과 고용조건이 보장된 괜찮은 여성일자리를 확대하여 빈곤여성들의 고용의 질을 높여야 한다. 특히 여성의 사회참여를 지원하기 위해 보육·학령기아동보호· 장기간병 등의 돌봄노동을 사회서비스분야 고용창출로 연계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여성의 날 즈음하여 다시 돌아본 여성노동의 현실은 여전히 답답하고 암울하다. Again 1908!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