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권 법무법인 내일 변호사 |
당사자격인 충청권에서는 여당을 포함한 여러 단체들이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을 성토하고 나섰고, 다른 지역에서는 자신이 적격자라면서 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를 위한 시동을 걸었다.
대통령의 그와 같은 발언에 대통령으로서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을지 몰라도, 이번 사태는 '세종시수정안'의 또 다른 재판이라는 점에서 그 충격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충분한 시간과 인내를 갖고 공동체의 문제점에 대해 토의를 한 다음 다수결에 의해 의사의 합치를 보며, 의사가 합치된 다음에는 이를 실행하는 것'이 기본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일단 의사결정을 하였다면, 반대파라도 이를 따라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화와 타협 그리고 반대파 설득을 통해 구성원들간에 의사의 적법하고 정당한 합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이자 근대 시민사회의 금과옥조인 금반언(禁反言)이라고 한다. 우리 속담처럼 '한 입으로 두말하면 안된다'는 원칙으로 종전에 합의될 당시와 사정이 급격히 변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신이 주장한 내용과 다른 내용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종시법안'은 노무현 대통령 공약을 통해 국민적 정당성을 받은 사안이고, 노 대통령 당선이후 여당과 야당이 수많은 심의과정을 통해 의사의 합치를 본 사안이다. 따라서 구성원들간에 의사합치가 이루어진 세종시법안을 시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그 법안을 시행도 하기도 전에 그 법안에 문제점이 있다고 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금반언에 해당된다.
금반언의 원칙이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고, 의사결정 한 이후에 중대한 사정변경이 생기면 종전의 의사합치를 깰 수 있는데, 그럴 경우 구성원들간에 사정변경에 대한 공감대와 그에 따른 종전 의사합치의 문제점들에 대한 공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세종시 법안의 경우도 정부여당의 지적처럼 치명적인 문제점(일부 정부부처만 이전되는 문제점 등)이 있었다고 한다면, 정부여당으로서는 우선적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이 문제점을 명확히 설명하고, 그 다음에 이 문제점을 치유할 새로운 수정안을 구성원들간의 자유로운 의사합치를 통해 도출해 냈어야 했다. 세종시 설치와 같은 중대한 국책사업일수록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이러한 원칙과 절차가 지켜져야 구성원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고, 종국적으로 사회경제적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금반언의 원칙을 배제한 채, '자신들이 지적하는 세종시법안의 문제점이 명명백백한데, 몽매한 백성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지역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듯한 태도로 사회구성원을 계도하기에 급급하였다. 금반언의 원칙을 지키지 않은 대가를 치른 당사자는 어찌 보면 정부여당이 아니고, 바로 대한민국 자신이었다. 세종시수정안으로 약 3년간 우리 사회는 심각한 갈등을 겪었고, 그에 따라 엄청난 사회경제적인 비용을 소모하였기 때문이다.
과학비즈니스벨트건은 세종시의 경우와 달리 입법화된 사항은 아니지만, 대통령 후보자가 공약으로 내건 정책이었고 또한 사회내부적으로도 어느 정도 의사합치를 본 사안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세종시 경우처럼 금반언의 원칙이 깨지면서 또 다시 사회경제적 비용이 지출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과학비즈니스벨트건이 세종시사태의 재판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한편으로 우리사회가 좀 더 성숙한 민주시민사회가 될 수 있도록 구성원들 특히 사회지도층이 금반언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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