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용균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 |
이왕에 부모가 모이는 자리인 만큼 학교 교육은 지식기반 향상 외에도 제2의 사회교육장으로 동료 간에 싸움도 하고 맞기도 하면서 성장하는 가운데 광범위한 모델링을 보고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다. 내 자식은 절대 손해 보면 안 되고 남의 자식은 상관없다는 부모의 이기심을 버리고 남을 용서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어려서부터 가르치는 훈련이 돼야 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따라서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고는 절대로 도덕과 윤리가 성립될 수 없다는 가족사회의 중요성도 논의되는 부모교육이 되었으면 한다.
에릭슨(Ericson)의 이론 중 생애주기의 4단계인 근면성 대 열등감에 해당되는 초등학교 시기는 가장 상상력이 풍부하며 자아성장의 결정적 단계로 이 시기에 문제점이 고착화 될 경우 문제가 생기기 쉽다고 한다. 부모에 따라 아동에게 영향을 주며 더불어 자아를 깨달을 기회가 적을 때 결국, 한 가정의 한 사람으로 생활하는데 부적응 학생, 사회의 부적응 등 사회적 문제로 발생될 수밖에 없다.
더욱 저 출산으로 핵가족화의 아동들은 가족 내의 형제자매간의 교류가 줄고 아동은 다양한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격의 약화를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한명의 자녀가 부모의 눈에는 가정의 우상이 되어 있고, 개인주의만 키워주면 부모의 가정교육이 수반되지 않고는 세상을 상호보완적으로 살 수 있는 능력과 사고를 배양시킬 수 없다. 더욱 아동의 특성은 상처 받기 쉽고 세련되고 성숙한 방식으로 중대한 결정을 내릴 능력이 없으므로 아동이 신체적ㆍ정신적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책무가 부모에게 있음을 깨달았으면 한다.
인간의 능력은 부모의 뜻에 의하거나 본인의 뜻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조화의 원리에 따라 신의 뜻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의 능력이 우수한 동일집단으로 태어난다면 우리 사회는 유지될 수가 없고, 능력이 우수한 사람과 부족한 사람,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 얼굴이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이 모두가 사회를 유지시켜 주기 위해 상호보완적으로 조화의 이치에 따라 부족함을 채워주고 있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숨길 수 없는 사랑의 조화가 어느 하나도 더 필요하거나 뺄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쪽도 넘치거나 부족해서도 안 된다. 우리 아이는 잘해야 하고 남은 잘해서는 안 된다는 나의 아집과 편견이 우리 자녀가 점점 병들어 가도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에 다중(多重) 학원을 고집해야 할 것인가.
평등한 자격과 인격체로 양육을 원하는 부모라면 상호존중과 상호접근을 중시 여기고, 자녀의 성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를 표현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워나가는 현명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 가치관과 윤리로 누구나 평등한 자격으로 더불어 함께 살며 도덕적 가치관을 가르칠 책임과 의무가 부모와 교사 그리고 사회에 있다.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를 가르치며 사회는 혼자 살 수 없다는 공동체의 인격체로 양육하는 민주주의적 시민으로 바로 가도록 해야 할 것 같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혀 끝내는 멸망되는 약육강식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은 자가 승리한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훈련이 되어야 한다. 학교 성적에 있어 과정을 중시 여기고 부모는 한 과목의 100점에 더 칭찬을 아끼지 않는 교육 환경과 가정 분위기의 필요성에 공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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