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강수 대전문화재단 대표 |
피렌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도시로, 르네상스를 꽃 피운 문화예술의 도시다. 피렌체는 원래 유럽 상공업과 금융업의 중심지였으나, 14세기 무렵 문화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리고 피렌체 번영의 중심에는 메디치(Medici)가문이 있었다. 오늘날 경영이론에서 메디치효과(Medici effect)로 명명되는 그 가문이다.
메디치가는 원래 피렌체의 금융가였고, 금융산업을 통하여 얻은 부를 학문과 예술에 후원하였다. 물론 당시의 귀족과 부호들도 학문과 예술에 대한 후원활동을 벌여 나갔지만, 메디치가의 후원이 가장 두드러졌다. 메디치가는 단순한 금융가에 머무르지 않고, 가문에서 교황을 배출하는 등 르네상스를 지배한 가문으로 성장하였기에 피렌체를 문화예술도시로 만든 것은 메디치가문이었던 것이다.
메디치가가 정계에 등장한 것은 14세기부터로, 계급적 갈등이 표출된 도시민중시위인 피렌체 치옴피의 반란 때(1378~1382), 이 가문의 한 사람인 살베스트로 데 메디치가 민중편에 가담하여 지배층에 대한 공격에 앞장섬으로써 중망(衆望)을 얻었다. 얼마 후 지오바니 데 메디치(Giovanni de Medici, 1360~1429)는 금융산업으로 부를 축척했고, 이를 발판으로 정계에 투신했다.
그의 아들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는 정권을 장악하고 피렌체 공화국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부(國父)의 칭호를 받았다. 메디치가는 교황 레오 10세(Leo X, 1475~1521), 클레멘스 7세(Clement Ⅶ, 1478~1534)를 배출하였고, 마리아 데 메디치(1667~1743)는 프랑스왕 앙리 4세의 왕비가 되었다.
메디치가는 세계문화사에 빛나는 위대한 예술가들을 후원했는데,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otti, 1475~1564),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갈릴레오(Galilei Galileo, 1564~1642) 등이 그들이다. 메디치가는 이태리 르네상스의 후원자로서뿐만 아니라, 피렌체공화국과 토스카나공국(公國)의 지배자였다. 무엇보다 메디치가 세계문화사에 기억되는 것은 부와 권력을 가진 그들이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이해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최전성기 중 한 시기로 인정받는 프랑스의 루이14세도 예술을 후원했던 리더였다. 베르사유궁전으로 상징되는 루이14세는 “짐이 곧 국가다”라는, 역사 교과서에서 너무나 유명한 선언의 주인공이자 태양왕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유럽의 절대왕정을 확립한 인물이다. 이 루이 14세도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졌으며, 프랑스를 전 유럽 유행의 진원지로 만든 패셔니스타이기도 했다.
피렌체를 역사적인 문화도시로 만든 것과 프랑스를 유럽 유행의 진원지로 만든 것은 당대의 훌륭한 예술가들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당시 피렌체와 프랑스를 지배했던 리더들이었다. 리더가 가진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과 마인드가 피렌체를 문화예술의 도시로, 프랑스를 유럽 유행의 중심지로 만든 것이다.
결국 역사적인 문화예술도시를 만든 것은 예술가들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후원자들의 문화에 대한 마인드였다. 그 도시의 리더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그들이 예술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소유한 것이 문화도시를 가능케 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문화예술은 풍부한 창의력을 길러준다고 말한다. 역사에 남았던 리더 중 문화예술을 사랑했던 인물이 다수인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리더, 그가 문화도시를 만드는 조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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