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오 대전문화역사진흥회장 |
엊그제 대전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하다가 왠지 모르게 가슴을 쓰리게 하는 하나의 짤막한 기록을 보게 되었다. 이 기록을 접하며, 1919년 대전 인동장터에서의 3월16일 독립만세운동이 있고나서 일제의 탄압이 얼마나 심했으면 인동장터에서 불과 몇 백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척에 대전장터가 새로이 형성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지명지』300쪽을 보면 '장터' 부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대전장터는 냇가 남쪽에 있었던 시장으로, 지금의 중앙시장 부근에 있었다. 닷새마다(1:6) 큰 장이 섰으므로 장터, 대전장터라고 불렀다. (중략) 1954년 5월 장터가 인동지역으로 옮겨가서 이곳은 구장터라고 불리기도 했다.”
인동장터는 조선말부터 형성되어 북적대던 장터였다. 독립만세운동이 있고나서 일제의 감시 속에 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불과 몇 백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척에 대전장터가 새로이 형성된 것이다. 날로 약화되던 인동장터가 되살아 난 것은 대전지명지의 기록이 말해주듯 1954년 대전장터가 인동장터로 옮겨지고 나서 부터임을 알 수 있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면면히 유지해온 인동장터는 우리에게 교훈 주는 바가 적지 않다. 인동장터 상인과 주민 모두가 일제의 탄압 속에서 장터를 버리지 않고, 그 어려움 속에서 꾸준히 지켜온 것이다. 이러한 뜻 깊은 장터에서 수년 전부터 동구청의 주관으로 매년 3월16일마다 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이 재현되고 있음은 실로 그 의미가 크다. 올해의 행사는 구제역 여파로 쉬었다가 내년에 계속한다고 한다. 아쉽기 그지없다. 이 행사가 언제까지고 쉼 없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우리사회에 일제가 남긴 잔재는 참으로 많다. 몰라서 못 고치는 것도 있고 알면서도 의식이 빈약하여 고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특히 일제의 잔재가 무수히 남아 있다. 우리의 언어에서 하루빨리 일제의 잔재를 털어 내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 속에 들어 있는 잔재를 털어내는 일은 실로 국가적으로 심혈을 기우려 그 퇴치에 전력해야할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참으로 미미하다.
정부는 남의 나라 일처럼 가만히 손 놓고 되는대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이래저래 삼일절을 맞는 마음이 더없이 쓸쓸하다.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것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예는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다. 일제가 우리말의 고개를 뜻하는 '티'를 일본식 표기인 '치'로 바꾸어 전국의 고개에서, 두고두고 우리민족의 정기를 우롱하였다. '치'는 '티'로 바꿔 써야 한다. 이는 어지간한 이는 다 아는 사실이다. 함에도 바꿔 쓰지 않는 곳이 많다.
인동장터 행사에 참여하는 '민족극단 우금치'가 민족극단임을 자임하면서도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묻은 '치'가 들어가는 명칭을 '티'로 바꾸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민족정기를 바로 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말로만의 잔재 털기는 그 누구든 할 수 있다. 실생활 속에서 실제로 실천해 가는 속에 그 진정한 가치는 빛을 발한다. 올해의 삼일절은 일재의 잔재 중 단 하나라도 털어내는 삼일절이 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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