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11일 세상을 떠난 그의 1주기를 맞아 대전아트시네마가 추모 특별전을 준비했다.
특별전에는 세상에 그를 알린 누벨바그 영화의 결정판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희극과 격언’ 시리즈의 두 번째 연작인 ‘아름다운 결혼’과 베니스영화제에서 금사자상을 수상한 ‘녹색광선’, ‘계절 이야기’ 4부작 중 ‘겨울 이야기’ 등 4편이 상영된다.
로메르는 별로 극적이지 않은 ‘작은’ 이야기에서 인생을 깊이 있게 통찰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의 영화는 긴 대화로 유명한데, 때문에 ‘대사가 결정적인 문학적 영화’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하지만, 지적이고 사색적이며 세련된 대사는 사랑과 인간관계, 편견과 위선을 드러내며 신랄하면서도 위트가 넘친다. 때론 유쾌하다.
사랑의 신비, 사랑의 기적을 그려내는 이 연애술사는 스튜디오가 아닌 현장에서, 배우들과 토론하면서 영화 대부분을 즉흥 연출로 찍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단순하면서 우아하고, 클래식하면서 로맨틱하고, 가벼우면서 심각하고, 센티멘털하면서 도덕적이다. 문득 우리나라 감독 누군가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국내외 평론가들이 로메르의 걸출한 후예로 지목하는 인물. 그 사람이 홍상수 감독이라면, 맞다. 영화를 보러 가기에 앞서 상영시간을 꼭 확인하시길. (042)472-1138 대전아트시네마.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Ma Nuit Chez Muad. 1969)
엔지니어로 일하는 장 루이는 크리스마스 이브, 모드라는 매혹적인 여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루이는 모드를 유혹하고 싶지만 성당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인에 사로잡혀 도덕적인 문제를 고민한다. ‘작은’ 이야기에서 인생을 깊이 있게 관찰하는 로메르의 장기가 잘 드러나 있다.
▶아름다운 결혼(Le Beau Mariage. 1982)
‘희극과 격언‘ 연작의 중심이 되는 모티브는 여성, 특히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의 주체가 되는 여성, 그 욕망의 추구 안에서 이런저런 실망을 경험하는 여성이다. 주인공 사빈느는 아름다운 결혼을 꿈꾼다. 그녀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결혼을 할거야‘라고 내비치는데, 왜 그랬을까.
▶녹색광선(Le Rayon Vert. 1986)
맑은 날 해가 수평선 너머로 넘어갈 때 간혹 나타난다는 녹색 광선. 마지막 장면은 놓치지 마시길. 로메르가 몇 달 간의 집념의 결실로 포착한 장면은 주인공 델핀느와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선사하는 고마운 순간이다. 침체된 프랑스 영화가 부흥하는 계기가 된 뛰어난 영상미가 일품.
▶겨울 이야기(Conte d`Hiver. 1992)
뜨거운 여름을 보낸 펠리시아와 샤를르. 펠리시아는 주소를 가르쳐주지만 그것은 잘못된 주소였고 둘은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5년 후. 로메르 영화 대부분이 내면의 갈등을 겪는 주인공이 배신을 당하는데 반해 드물게도 기다림의 승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기적의 순간’이 다가온다./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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