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훈 한남대 경영학과 교수 |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이장희 등이 출연한 세시봉 특집에서는 평소에 노래방 이외에서는 몇 십년 동안 부르지 않았던 포크송을 1970년대 포크 가수들이 주축이 되어 노래했고, 너무나 아름다워서 말 그대로 주옥 같았다고 하겠다.
세시봉 초창기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들은 영어로 시작된 노래이거나 번안곡이 대부분이었다.
'I saw the light on the night that I passed by her window I saw the flickering shadows of love on her blind(딜라일라)'와 '그린 그린 그래스 오브 홈(Green green grass of home)'을 지금의 50~60대들은 '콩글리시'로 따라불렀다.
그리고 송창식·윤형주 트윈폴리오의 '하얀 손수건', '웨딩케익', '축제의 노래' 등은 소녀들의 가슴을 울린 번안곡이었다. 이들은 번안곡에서 발전해 슬슬 자신들이 작곡한 '불꺼진 창'과 '라라라' 등의 노래를 내놓았다.
'오늘 밤 나는 보았네 그대의 불꺼진 창을, 희미한 두 사람의 그림자를 오늘 밤 나는 보았네'(불꺼진창/이장희 작사·작곡),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라라라/윤형주 작사·작곡).
그리고 당시의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애창했다는 곡도 윤형주의 작사·작곡이었다.
'밤 하늘에 별 만큼이나 수 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우리들의 이야기)로 이어진 노래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곡이며 예쁜 가사인가.
송창식도 지지않고 호탕한 노래를 작곡했다. 청춘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 등장해 유명해진 '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왜불러)와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고래사냥)는 당시 젊은이들의 청춘이며 행동이고 우울했던 낭만이었다.
또 김세환은 젊음이 물씬 풍겼던 이장희 작사ㆍ작곡의 노래 '비'와 윤형주 작사·작곡의 노래 '길가에 앉아서'를 부드러운 스타일로 구성지게 불렀다.
'우리 처음 만난 날 비가 몹시 내렸지. 쏟아지는 빗속을 둘이 마냥 걸었네'(비), '가방을 둘러멘 그 어깨가 아름다워'(길가에 앉아서).
세시봉은 1970년대 명동의 음악다방으로 신청곡 감상은 물론 조영남·송창식·이장희·윤형주·김세환 등 당시 노래에 청춘을 건 젊음들이 모여 공연을 했던 곳으로, 60~70년대 암울했던 시대에 청년문화를 일궈낸 음악감상실의 산실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이들의 노래는 1975년 6월 발령된 '긴급조치 9호'로 금지곡 조치가 벌어지면서 200여곡이 금지곡이 되어버렸다. 송창식이 부른 '왜불러'와 '고래사냥', 김민기의 '아침이슬'과 '상록수' 등이다.
특히 양희은의 '아침이슬' 은 김민기 작사·작곡으로 젊음의 시대적 혈기과 시대적 흐름을 노래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의 젊은이들을 상징하는 통기타와 팝송, 생맥주와 청바지는 대학가요제로 이어지지만, 이들의 노래는 당시의 청춘과 고뇌, 시대적배경이 담겨 있어 더욱 아름답다.
경영학자로서 이들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우리나라 기업처럼 처음에는 외국곡을 번안하여 시작했지만 열정이 뭉쳐진 도전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우리 것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시봉 열풍 덕분으로 잊혀졌던 당시 나의 18번(애창곡)이었던 송창식의 '비의 나그네'와 이장희의 '한잔의 추억'이 저절로 뇌리에서 흘러나와 노래로 이어졌다. 사라지고 잊혀 졌던 우리들의 노래를 부르게 해준 세시봉 신드롬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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