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택]지난 겨울은 너무 추웠다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호택]지난 겨울은 너무 추웠다

[NGO소리]김호택 전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ㆍ연세소아과병원장

  • 승인 2011-03-02 13:59
  • 신문게재 2011-03-03 20면
  • 김호택 전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ㆍ연세소아과병원김호택 전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ㆍ연세소아과병원
▲ 김호택 전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ㆍ연세소아과병원장
▲ 김호택 전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ㆍ연세소아과병원장
나이 든 할머니들이 병원을 오면 젊은 시절의 힘들었던 고생담을 늘어놓을 때가 가끔 있다. 젊어서 어린 새댁을 집에 두고 바람피우며 술주정하던 서방에 대한 서운함 아니면 시어머니에게 구박받으며 살아야 했던 서러움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이다. 신세한탄을 병원에까지 와서 하는 것을 보면 나에게만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그 할머니의 고생담을 한 두 번씩은 들었을 것이다. 애들 키우며 하신 고생이 더 클 것 같은 분들도 자식 때문에 한 고생은 그리 억울해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그 고생담의 뒤에는 어머니로서의 자부심과 긍지가 엿보인다. 그 시절에는 요즘 젊은 사람들과 달리 부부간에 알뜰한 정을 나누면서 살던 때가 아니었다고 나는 들었다. 남편이 속을 썩이지 않는 집일지라도 대가족이 모여 층층이 어른들 모시고 아이들도 많은 집안분위기에서 부부간에 잔정을 주고받는 일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시어머니에게서 받은 구박도 몇 십 년 부대끼며 살다 보면 결국 고부 사이에 싹튼 미운 정도 작지는 않을 것 같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자식은 평생 애프터서비스 대상'이라는 우스갯 소리와 같이 고생의 질로만 따지자면 자녀 양육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옛날을 떠올리며 서운해 하는 것은 대부분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이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아무리 고생을 했어도 그 고생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두고두고 그 억울함을 반추(反芻)한다고 설명한다.

고생한 이유를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면 억울한 고생인 것이다. 억울하니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얘기한다. 얘기를 해도 시원치 않으니 또 다시 사연을 늘어놓는다. 나이 먹고 생각해 보니 어려서 멋도 모르고 따라 나선 시집살이가 억울한 것이다. 남편이 섭섭하고 시어머니가 서운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억울한 것이다. 왜 시집을 가야 했고 왜 그 호된 시집살이를 겪어야 했는지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명분이 없다는 것 때문에 더욱 억울한 것이다.

그래서 수십 년 지나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남편은 힘이 빠졌으니 눈치 볼 사람도 없고 자식은 내 편인 지금 그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보상받으려고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을 얘기하고 또 되새기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열심히 그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맞장구 쳐줘야 한다. '저런! 저런!'하며 추임새까지 넣어야 한다. 그래야 그 할머니의 맺힌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더 풀어지고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삼한사온이 아니라 삼한사한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 혹독한 추위로 고생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데 매스컴에서는 과학적으로 따져 보니 올 겨울이 예년에 비해 그렇게 많이 추웠던 것도 아니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 얘기를 들은 귀 밝은 사람들은 춥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점잖게 '사실은 올해가 그렇게 추운 것도 아니랴.' 하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너무 춥다'고 하면서 서로에게 확인하는 것은 '이렇게 추운 날씨에 고생하는 것이 나 때문은 아니다. 그리고 나만 하는 고생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 서로 위로하자'는 마음인 것이다. 이럴 때 과학을 운운하는 것은 생뚱맞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라도 고생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래! 그래! 너무 추웠어!'하는 추임새를 넣어야 한다. 그래야 추위 때문에 했던 고생이 덜 억울하다.

겨울은 지나갔다. 이제 따뜻한 봄이다. 봄에는 우리 모두가 희망의 씨를 뿌리고, 구제역도 날아가 버리고, 석해균 선장도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고, 춥고 배고픈 사람들도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2.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3.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4.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5.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3.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4.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5.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