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환]통(通)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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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환]통(通)하였느냐

[시사에세이]김창환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

  • 승인 2011-02-28 14:38
  • 신문게재 2011-03-01 20면
  • 김창환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김창환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
▲ 김창환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
▲ 김창환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
우중충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며느리는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 다림질을 하고 있다. 이때 시어머니가 말을 건넨다. “아가, 할미가 업어줄까?” 이 말은 할미가 젖을 빠는 손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밖에 널려 있는 빨래를 거둬들이라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하는 분부인 것이다.

텃밭에 가 나물 뜯어 국거리 마련하랴, 저녁밥 지으랴, 애 돌보랴, 일손이 바쁜 며느리가 시어머니 방 앞에서 강아지 배를 차 깨갱거리게 하거나, 마루에서 노는 닭들에게 앙칼스레 욕을 퍼붓는다. 시어머니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바구니 들고 남새밭에 가면 되건만 '그렇잖아도 텃밭에 가려고 했는데 강아지 배를 차…. 어디 가나 봐라'하고 버티고 있다. 며느리는 아들에게 말한다. “니 어미는 무슨 팔자로 손이 세 개 달려도 모자라냐”고.

그야말로 소통의 부재다. “저는 아이 업고 밥 짓기 바쁘니 바구니 들고 남새밭에 가서 국거리좀 뜯어 주실래요?”라고 했다면 시어머니는 “응, 그러마. 지금 담배 피우고 있으니 다 피우면 나가마”라고 말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IMF 간부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국 경제가 경착륙을 피했다. 최악의 상황은 지나갔다.” 몇 달 뒤 세계 최고 두뇌집단인 IMF는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하는 데 무능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 후 IMF는 왜 금융위기를 예측할 수 없었는지 조직 내부의 문제를 파헤치고 스스로 무능에 빠졌다는 뼈아픈 반성문을 내놓았다. '소통의 부재가 눈을 가렸다'는 게 요지다. IMF는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무엇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해냈다.

IMF는 보고서를 통해 처방전을 내렸다. 첫째, 구성원들이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고, 이견이 존중되는 환경을 조성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라고 조언했다. IMF의 몇몇 간부는 '위에 강한 이견을 말하면 출세길이 막힌다'고 느꼈다고 실토했다. 셋째, 부서 이기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라고 강조했다.

어느 교수가 쓴 책이 유명세를 타면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가지' 시리즈가 술자리 안주가 되고 있다. 우리 주변엔 '말하지 않는' 것보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상사에게, 후배에게, 친구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 등등, 서로 다칠까봐, 불이익을 당할까봐 무서워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통의 문제는 경영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 생각해야 할 과제다. 혼다 사장이었던 가와시마 기요시는 자기 의견이 80%를 넘어서자 사표를 냈다. 그는 사표의 변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2~3년 동안 내가 말한 일들이 사내에서 8할이나 통과됐다. 6할이 넘으면 원맨 경영의 폐해가 나타나는 위험신호라고 한다. 그래서 퇴임을 결정했다.”

소통은 서로 마음을 열고 차이를 존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생각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신념이나 이념은 같을 것이다.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경청을 해야 한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고 했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뜻이다. 기혈이 통하지 않고 막히면 병에 걸리듯, 소통의 통로가 막히면 조직 역시 병들게 된다.

온갖 경영기법이 난무하는 시대에도 소통은 여전히 사람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하지만 어느 궤도에 올라서면 소통을 못하고 독주하게 된다. 그래서 소통을 잘 하는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다.

김병만 선생은 16년이나 같은 일을 계속해 경지에 올랐다. 달인 김병만 선생은 말한다. “16년 동안 해봤어? 안 해봤으면 말을 마!” 그렇다. 달인의 경지에 오르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경지를 지켜나가는 자기 고투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는 통(通)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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