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은 장검을, 한명은 단도를, 한명은 도끼를 들고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본다. 만주벌판에 쓰러진 외딴 객잔. 청나라 군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오는데. 죽을 둥 살 둥 서로 도와야할 판국에 이들은 왜 서로의 심장을 겨누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걸까.
‘혈투’는 팽팽한 심리스릴러다. 그것도 한 공간에 가둬두고 밀도를 높인다. 세 사람 사이의 물고 물리는 관계를 드러낼 때의 긴장감은 숨이 턱 막힐 정도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과거 장면을 통해 세 남자의 차례로 드러나는 세 남자의 비밀을 푸는 재미도 흥미롭다. 2인자의 설움을 털어내려 권력의 노예가 됐던 현명, 조정의 암투로 몰락한 양반가의 자제 도영, 부당한 거래로 전쟁터에 끌려온 두수. 세 사람의 싸움은 개인 대 개인이 아니라 부패한 권력구조, 부당한 사회구조가 빚은 부조리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영화의 약점도 여기에 있다. 과거 장면에서 나오는 배우들의 표정만으로 모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음에도, 여러 장면을 잇대어 계속 설명하려 든다. 그것도 부족해서인지 대사도 너무 많다. 영화 초반 숨죽이게 했던 긴장감은 막바지에 이르면 허탈해진다.
그럼에도 ‘혈투’는 몇 년간 나온 시대극 중 가장 독특한 형식과 소재의 작품으로 평가할 만하다. 박희순 진구 고창석 등 세 배우는 연기파답게 내공 있는 열연으로 화면을 꽉 채운다.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의 시나리오를 쓴 박훈정의 감독 데뷔작이다./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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