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녀 맹랑하다. 살해된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하러 와서는 울기는커녕 관 값을 흥정하고, 복수를 위해 ‘배짱이 두둑하다’고 알려진 보안관 루스터 카그번을 고용하면서 거금을 제안한다. 게다가 범인을 찾아 거친 황야로 떠나는 카그번에게 동행하겠다고 고집부린다. “어머니는 정신줄을 놓았고 동생은 아직 어리니 내가 복수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하는 겁 없는 소녀. 열 네 살이라면 누가 믿을까.
코엔 형제는 존 웨인의 무게를 훌쩍 벗어 던진다. 포터스의 원작에 충실한 버전을 만들겠다는 데야 제 아무리 존 웨인이라 해도 토를 달긴 어려울 거다. 10대 모험극 같은 원작의 맛과 존 웨인이 잊었던 위트를 십분 살려낸다. 조숙한 소녀 매티의 시선으로 바라 본 어른들의 세계는 종종 참을 수 없는 웃음으로 그려진다.
매티 역의 헤일리 스타인펠드는 발견이다. 앙다문 입매무새와 반짝거리는 눈의 이 당돌한 소녀는 이미 크리틱스 초이스 신인상, 시카고 비평가협회 여우조연상에 이어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노린다. 코엔 형제의 영화에서 다시 보기 힘들 당찬 여성 캐릭터 매티는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허풍과 과시로 가득한 사내들이 복수심에 가득한 소녀 덕에 성장하고 구원으로 향하는 이 유쾌하고 기이한 이야기는, 거친 황야를 이상한 나라로 담아낸 화면과 배우들의 연기로 힘을 얻는다. 코엔 형제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어딘가 모자란 남자’들은 여전하다.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제프 브리지스의 캐그번은 술독에 빠져 보기 민망한 실수를 연발하고, 압권은 콧수염 턱수염으로 파격 변신을 한 맷 데이먼. 현상금을 노리는 텍사스 레인저 라뷔프로 분한 그는 등장 분량은 적지만 시쳇말로 미친 존재감을 과시한다.
세 사람의 아웅다웅 위험천만 유쾌한 모험담이 이어지던 영화는 막바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아버지를 위한 복수가 과연 진정한 용기였는지 묻는 것이다.
코엔 형제는 “세르지오 레오네 풍의 웨스턴 오페라도, 존 포드 풍의 비극적인 웨스턴을 찍을 생각도 없었다”고 말했지만, 낭만적인 웨스턴으로도 뽑아냈다. 냉소와 애수가 가득한 멜로드라마로 봐도 빼어난 수작이다. 코엔 형제의 골수팬들은 그간 보여준 문제의식이나 괴짜 근성이 없다고 서운해 할지 모르겠지만 서부극다운 서부극을 기다려온 웨스턴 팬들에겐 반가운 영화다. 아카데미 작품상 감으로 손색이 없다./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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