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길]대통령의 말과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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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대통령의 말과 약속

[금요논단]정용길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

  • 승인 2011-02-24 14:22
  • 신문게재 2011-02-25 20면
  •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정용길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
▲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
▲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
계포일낙(季布一諾)이라는 말이 있다. 초(楚)나라 사람 계포는 의협심이 강해 한번 약속을 하면 그것을 끝까지 지켰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계포가 한(漢)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가 천하를 걸고 싸울 때 항우의 장수로 출전해 유방을 괴롭혔다. 항우가 패망하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게 되자 계포는 쫓기는 몸이 됐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고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를 한고조 유방에 천거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그는 용서를 받았고 다음의 황제 대에서도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도 약속을 소중히 지켜 모든 사람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았던 것이다.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관계를 갖고 살아가는 삶의 과정에서 약속을 지키는 것은 사회생활의 필수적 덕목이며, 이는 신뢰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공자도 국가경영에 있어서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無信立)고 했다. 현대 경영에서도 신뢰는 사회적 자본으로서 국가나 기업 경쟁력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다. 보통 사람의 경우에도 이럴진대 하물며 국가의 지도자가 국민들에게 한 말과 약속은 더욱 무게를 더하며 역사적 책무가 따른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완성된다. 선거는 각 정당이나 후보자가 국민들에 공약이라는 형태의 공적인 약속을 하고 경쟁을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는 과정이다. 따라서 선거과정에서 제시된 공약은 어떤 약속보다 우월하며, 반드시 지켜져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만일 선거 때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해 국민들에게 거짓 약속을 하고, 선거에서 이긴 후에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다면 이는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저열한 행태이다.

지난 신년 방송 좌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공약이었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을 백지화하겠다고 했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표를 얻으려고 내가 관심이 많았을 것이고, 거기에 얽매이는 것은 아니고, 공약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라는 황당한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법에 따라 설치되는 위원회에서 입지 선정과 관련 원칙을 마련할 것이고, 공약에 얽매이지 않고 백지상태에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떻게 대통령이라고 하는 사람이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표를 얻기 위해서 거짓 약속을 했다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국민을 절망케 하는 대통령의 낮은 윤리의식을 반영하는 발언이다. 세종시 문제로 인해 그토록 국민적 혼란과 갈등을 야기한 것도 모자라 다시 충청도민에게 참담한 배신감과 강한 분노를 안겨 주고 지역간 갈등을 유발하겠다는 말인가? 이는 약속 위반이고 대국민 사기극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충청도민에게 약속한 정책이며 공약이다. 공약집에 없다고 한 대통령의 말은 명백한 사실조차 부정하는 거짓말이다. 세종시-대덕특구-오송·오창을 연결하는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조성하여 한국판 실리콘 밸리로 육성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며, 이는 공약집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다. 한나라당도 지난 18대 총선에서 충청권 공약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구축하겠다고 하였다. 또한 작년 1월 교육과학기술부는 세종시의 자족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과학비즈니스벨트가 필요하다고 하였고, 세종시가 가장 적합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처럼 수많은 약속과 다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가볍게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하는 대통령의 행태는 품격 있는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사회의 지배적 규범으로 자리 잡게 되면 그러한 사회는 미래가 없으며 문명사회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이 대통령은 국민에게 진정어린 사과를 하고 공약을 충실히 지키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더 이상의 리더십 실종과 국민적 혼란을 막는 길이다.

우리 국민들이 CEO 출신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기업 경영자의 합리적이고 유연한 판단을 기대한 것이지 때와 장소에 따라 말을 바꾸고 약속을 파기하는 천박한 장사꾼의 모습을 보고자 함이 아니다. 취임 3년을 맞는 오늘 눈앞의 정략적 이해관계보다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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