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세]과학벨트, 정치인들의 말잔치 재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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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세]과학벨트, 정치인들의 말잔치 재료가 아니다

[시론]김용세 대전대 법학과 교수

  • 승인 2011-02-23 15:41
  • 신문게재 2011-02-24 21면
  • 김용세 대전대 법학과 교수김용세 대전대 법학과 교수
▲ 김용세 대전대 법학과 교수
▲ 김용세 대전대 법학과 교수
말재간으로 발신(發身)한 정치인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고 흐린 날의 산맥과도 같다. 말로써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민다.”

김 훈이 소설 '남한산성'에서 빛나는 문장으로 탄식해 마지않은 인조(仁祖) 묘당(廟堂)의 말잔치가 370여년 후 오늘의 지역정가에 넘치고 흐른다. 저마다 5년, 10년 전 저들의 약속을 되짚고, 저자가 한 말을 이 자가 부연하면서 국가 미래와 과학 발전을 위하여 크고 높게 내뱉는 '지당하신 말씀'들이 충청권에 넘치고 흘러 눈앞의 겨울 들판을 뒤덮고 있다.

도시서민과 농민들은 불경기와 구제역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건만, 저들은 의미 없는 말들을 앞세워 제 허물을 감추고 만에 하나 일이 잘되는 경우에 제 공을 내세울 궁리에만 몰두한다.

심지어 누구는 영남과 호남, 경기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지역이 과학벨트 유치에 공을 들이는 현실을 비판하기까지 한다. 전국적인 유치경쟁이 지역갈등과 국론분열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방자치제도가 이미 궤도에 오른 현실을 고려하면, 어느 지역이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 지역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 국책사업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전도 자기부상열차, 로봇랜드, 첨단의료복합단지 등 대규모 국책사업이 추진되면 그때마다 예외 없이 유치경쟁에 가담해 왔다.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도 유치에 성공하지 못했고, 그때마다 국책사업 입지가 정치논리로 선정되었다느니 충청권 홀대로 인하여 유치에 실패하였다느니, 남 탓을 내세워 제 탓을 덮고자 노력했을 뿐이다.

지금 다른 지역들은 '과학벨트 충청권 입지는 대통령 발언으로 백지부터 다시 검토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렇다면 우리도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유치경쟁에 뛰어든 것 자체를 비난하거나, 오래전부터의 약속이니 무조건 준수해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게다가 '형님예산'이 확정되어 중이온가속기 건설 예산이 이미 포항에 배정된 상황에서 정부가 과학벨트 충청권 입지를 선언해 준들 새로운 '구두선'에 그칠 우려마저 큰 상황이다. 과학벨트의 핵심시설은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다. 정부여당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염두에 두고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를 충청권에 유치한다고 선언한들, 막대한 예산이 이미 포항에 배정된 상황에서 현정부 임기 내에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충청 정치권은 우물 안에 들어앉아 서로 견제하면서 제 탓을 호도할 궁리만 하고 있다. 단체장·의원은 물론이고 다음 선거의 예비후보군에 이르기까지 대동소이한 내용의 '지당하신 말씀'들을 우물 안으로 쏟아낼 뿐이다.

여당에서는 과학벨트마저 '형님권력'을 둘러싼 계파싸움으로 용해된 듯한 양상이고, 제1야당인 민주당은 제 몫 챙길 궁리에 몰두하여 논란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선거 때면 지역의 대표정당을 자임하는 자유선진당은 이번에도 지역의 정치·행정 역량을 총결집하는 정치력을 보이기는커녕, 우물 안에서의 존재감을 유지하기조차 숨이 가쁜 양상이다.

대전 충청지역이 패배의식을 극복하고, 선거 때마다 바람에 휩쓸려 우왕좌왕하는 행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지역의 정치·행정계가 대동단결하여 청와대와 여의도가 실질적인 압력으로 느낄만한 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세종로와 과천에서 과학벨트 입지의 당위성을 납득할만한 레토릭을 개발해 내야 한다. 그다음에 더 커진 파이를 놓고 다투는 성숙한 정치를 보고 싶다. 우물 안 시민들의 정서에 호소하는 수준 낮은 정치공학은 이제 폐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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