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붕 보령주산중 교사 |
나는 요즘 어떤 드라마에 환호하고 있다. 현실에서 산자의 목소리는 여러 원인으로 각색되고 굴절된다. 그러나 죽은 자의 목소리조차 조작되고 날조된다면 그것은 사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아니며 정의가 싹틀 수조차도 없을 것이다. 학생들이 살아 갈 세상은 정의로워야 한다.
그러나 무심한 다수결로 정의사회가 구현되지는 않는다. 과학적 지식과 증거는 많은 사람이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뛰어난 이 작가 그룹으로 인해 많은 학생들은 감동을 받고 자기도 모르게 정의로운 세계를 꿈꾸게 되었다. 드라마 속 과학수사연구소의 과학적 지식과 방법론의 섬세한 터치로 보아 작가에게는 틀림없이 학창시절 과학 수업 시간에 많은 영감을 준 과학 선생님이 있을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모든 학생들이 과학에 젖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나는 학생들에게 과학을 소개하는 방법으로 과학 작품을 추천해 왔다. 탐구 대상으로 우리 주변의 친근한 환경에서 소재를 찾도록 하고 관심이 가는 가까운 동·식물 등을 오랜 시간 꾸준히 관찰하도록 지도한다. 그러다보면 의문이 생기고 결국 연구할 가설을 세울 수 있다. 튼튼한 가설로 연구계획을 짜기가 매우 수월해진다. 계획대로 연구가 진행되어도 결과는 연구 가설을 지지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 학생들은 실망할 수도 있다.
새로운 가설을 세우려는 의지가 이때 필요하다. 새로운 시도로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얻게 되면 학생은 큰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이 때 교사가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개입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능력이 뛰어난 학생은 10% 이하, 그렇지 못한 학생은 90% 이상을 개입하더라도 학생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다면 모두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과학 작품을 만들며 놀던 학생들이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들이 있다. 사소한 현상에도 성실하고 신중하게 접근했던 학생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걱정이 앞선다. 시간이 흘러 그 아이들이 과학기술자의 길로 인도한 나를 원망하지나 않을까? 요즘 과학기술자가 그 위치에 걸 맞는 대접을 받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들은 논문으로 표현하고 기술로 조용히 주장할 뿐이다. 큰 소리로 대우해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말을 경청조차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요즘 우리 사회가 먹고 사는 원천이 부모 세대와 지도자들이 과학기술자들에게 전폭적으로 지원한 결과일 것이다. 요즘 많은 학생들이 과학기술 분야를 꿈에 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적 명예와 예우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지도한 학생이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합격하여 학교로 초청되었다. 후배들에게 강의를 마치고 교감 선생님이 농담조로 “앞으로 성공해서 후배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그래라”라고 말했다.
“과학자는 춥고 배고픈 길이어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충격적인 대답이었다. 과학자의 길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대 합격을 마다하고 이공계를 선택한 녀석의 심지가 깊음에 기뻤고,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뒤돌아 가고 있을 다른 영재들의 뒷모습에 슬펐다.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행복해 지기를 바라고 있고 행복은 정의에 의하여 실현될 것이다. 정의는 과학적 토대위에서 성장하며 과학은 현실을 현명하게 판단하게끔 안내할 것이다. 이 신념이 바로 나로 하여금 과학실에서 학생들과 웃고 떠들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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